2024년 4월 20일(토)

[사회문제를 보면 일자리가 생긴다-⑤] 어린이의 ‘꿈의 직장’ 되다…나희선 샌드박스네트워크 COO

인공지능·사물인터넷(IoT)·로봇 등이 주축이 되는 4차 산업혁명이 가속도를 내면서,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치솟고 있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9.8%로 역대 최고였고, 연간 실업자 수도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었다(2016 통계청). 글로벌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면서 저출산 고령화, 공동체 붕괴, 소외계층 급증 등 新사회문제도 급증하고 있다. 미래 일자리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 더나은미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업가 정신으로 사회문제 해결과 비즈니스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소셜이노베이터(Social Innovator)’들을 만났다. 사회문제를 들여다보고 일자리를 만들어낸 8인의 소셜이노베이터를 소개한다.

유튜브 1인 창작자 콘텐츠로 어린이가 가고 싶은 ‘꿈의 직장’ 만들다 

 

[사회문제를 보면 일자리가 생긴다-⑤] 
50억 투자 이끈 종합 MCN 샌드박스커뮤니케이션
마인크래프트로 교육 콘텐츠 개발…콘텐츠 마켓 ‘MIP’ 소개

 

“숫자 0이랑 곱하기 타일을 찾는 게 핵심이겠네! 빨리 흩어져서 찾아보자”

제한시간 30분 안에 도시 곳곳에 숨겨진 숫자와 기호타일을 활용해 0을 만드는 ‘0을 완성하라’ 게임. 케빈가장 먼저 가로등에 매달린 상자 속에서 숫자 0을 찾자, 다른 참가자들도 타일 모으기에 열을 내기 시작했다. 제한시간 종료 후, 참가자들이 일제히 광장으로 소환됐다. 모두 숫자 0과 곱하기로 ‘0 만들기’를 끝낸 상황. 마지막으로 수식을 만들고 있는 플레르의 주변으로 구경꾼이 모여들었다. “플레르님은 곱하기가 없나봐” “빼기는 없어요?” 플레르가 1을 최대한 큰 수로 나누며 0에 가까운 소수를 만들자 구경꾼들이 저마다 조언에 나섰다. 그 때, 플레르가 폴짝 점프하며 숫자 1타일을 0으로 교체했다. “이게 무슨 수식이지?” 구경꾼의 어리둥절한 목소리에 진행자인 야마꼬가 미소 띈 목소리로 말했다. “플레르님도 수식을 완성했네요. 0은 어떤 수로 나눠도 0이랍니다!”

 

교육방송이나 만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구독자 18만의 유튜브채널 ‘샌드박스에듀케이션’에 올라온 컴퓨터 게임 실황 ‘숫자의 연금술사’ 동영상에서 벌어진 일이다. 게임의 배경과 규칙은 1인 창작자(Creator)들이 직접 ‘갓게임(God Game·플레이어가 세계를 창조하는 형태의 게임 장르)’의 일종인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해 만들었다. 이 콘텐츠는 업로드 일주일 만에 조회수 1만을 기록하며, 어린이들에게 사칙연산으로도 즐거운 놀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샌드박스에듀케이션 채널을 운영하는 곳은 국내 대표 MCN(Multi Channel Network·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창작자 네트워크) 중 하나인 ‘샌드박스네트워크’. 소속된 1인 창작자만 100명 이상, 이들이 생산하는 콘텐츠의 월간 조회수는 무려 4~5억뷰에 달한다. 샌드박스네트워크는 창업 2년 만에 5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으며, 최근에는 소속 창작자를 위한 전용 스튜디오도 개설했다. 스튜디오에서는 풀 크로마키 촬영(실물 피사체를 제외한 배경 전체를 합성하는 촬영기법) 등 다양한 실사촬영이 가능하다. 컴퓨터 화면을 기반으로 하는 종합게임방송, 음악방송 등이 가능한 1인용 방송부스도 6개나 갖췄다. 세계 최대 규모의 콘텐츠 마켓인 ‘MIP Junior’에 연사로 선 말릭 듀카드(Malik Ducard) 유튜브 어린이&교육 글로벌 책임(Kids & Learning, Global Head)은 “디지털 언어에 익숙한 아동들에게 적합한 교육 콘텐츠를 제공한다”며 샌드박스에듀케이션을 언급하기도 했다.

 

샌드박스네트워크의 중심에는 145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채널 ‘도티TV’의 주인공, 나희선(31) 샌드박스네트워크 COO가 있다. 2013년 ‘도티’라는 닉네임으로 처음 게임방송을 시작한 그는 2014년 친구 이필성 CEO와 함께 샌드박스네트워크를 창업했다. 1인 창작자 6명과 직원 3명이 함께한 조촐한 출발이었다. 법관을 지망하던 청년이 제대 후 1인 창작자가 되고, 회사를 세워 어린이 전문교육 채널을 만들기까지. 지난 3년간 그에게 일어난 마법 같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9일, 샌드박스네트워크 사옥을 찾았다.

◇‘1인 창작자’에서 MCN 회사 COO로…게임, 교육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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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선 샌드박스네트워크 COO. 구독자들에게는 유튜브채널 ‘도티TV’의 도티로 더 잘 알려져있다. /샌드박스네트워크 제공

도티가 처음 방송을 시작한 것은 군대를 전역한 27살 때의 일이다. 연세대 법학과를 전공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그는, 로스쿨이 생기면서 법조인에 대한 꿈을 다시 한 번 고민하기 시작했다. 도티는 “나 역시 또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취업을 고민하던 청년이었다”면서 “진로를 고민하던 중 군에 있을 때 삶의 낙이었던 TV 프로그램이 실마리가 됐다”고 말했다.

“군대에 있는 동안 재미있는 콘텐츠 하나가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알게 됐어요(웃음). 제대 후 PD의 꿈을 품고 바로 신문방송학과 전공수업을 청강했습니다. 그런데 꼭 방송국 PD가 돼야만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당시 가수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이 유튜브를 통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콘텐츠만 좋다면 유통할 수 있는 채널은 얼마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방송국에 입사하기 전, 미리 경험하는 셈 치고 유튜브를 시작하기로 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의 팬이기도 했던 도티는 직접 편집한 경기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하며 조금씩 구독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직접 편집한 영상이 인기를 끄니 재미가 붙었다. 구독자 1000명을 목표로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 ‘심상치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2013년부터는 아예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터넷 방송으로 마인크래프트 등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하고, 그 녹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것. 호기심과 취미에서 시작한 일은 어느새 직업이 될 만큼 자리를 잡았다. 2014년에는 함께 콘텐츠를 만들던 잠뜰, 태경 등과 함께 MCN 회사 샌드박스네트워크를 설립했다.

게임 콘텐츠 창작자로 승승장구 하던 도티가 어린이 교육 채널 ‘샌드박스에듀케이션’을 론칭한 것은 2015년 6월. 계기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달린 댓글이었다.

“제 채널 구독자가 주로 어린 친구들이다보니 학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달렸어요. ‘도티님 영상 보고 바로 학원가야 해요’ ‘요즘 학교에서 분수를 배우는데 너무 어려워요’ 이런 댓글을 볼 때마다 안타깝기도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이 됐죠. 제 영상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니까 이걸로 공부가 되는 콘텐츠를 만들면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유익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친구들도 부모님 눈치 보지 않고 영상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구글의 제작지원을 받아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샌드박스에듀케이션 채널에 본격적으로 교육 콘텐츠가 업로드 되면서 폭발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도티가 직접 홍길동이 되어 고려시대를 여행하는 ‘도길동의 여행’은 42만, 전래동화 ‘옹고집전’을 각색한 ‘옹도집전’은 1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친구의 소화기관을 여행하며 병을 고쳐주는 ‘몸속대탐험’의 누적조회수는 290만으로 세계 최대 콘텐츠 마켓인 ‘MIP’에 소개되기도 했다.

교육채널 뿐만이 아니다. 건전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가는 동영상이 그대로 케이블 채널 ‘애니맥스’에 ‘도티&잠뜰TV’라는 이름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최고 시청률이 2.6%를 넘기면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기존의 창작자들과 다르게 자극적인 소재나 욕설을 사용하지 않고, 바른 콘텐츠를 만든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도티가 동료들과 함께 기획한 상황극 콘텐츠 ‘외계인학교’ 시리즈는 10권짜리 어린이 책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10대들이 그 동안 문화 콘텐츠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보고 싶은 것 대신 어른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생산됐죠.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좋아하는 방식으로 알려주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정한 방식으로 가르치니까요. 반면 도티TV와 샌드박스에듀케이션은 모든 콘텐츠가 이용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전래동화 상황극이 재밌다‘고 하면 신화를 활용한 상황극을 더 만들고, 학교에서 뭐가 어려웠다고 하면 그걸 좀 더 쉽게 푸는 콘텐츠를 만들죠. 이런 시도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흔치않다고 들었습니다. 도티TV와 샌드박스에듀케이션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들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콘텐츠를 정성껏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샌드박스네트워크, 어린이가 가고싶은 ‘꿈의 직장’ 되다

 

“제 꿈은 샌드박스네트워크의 1인 창작자가 되는 거예요. 진지하게 가족들과 상의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샌드박스네트워크의 멤버가 될 수 있을까요?”

샌드박스네트워크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가고 싶은 ‘꿈의 직장’으로 불린다. 포털사이트에 샌드박스네트워크를 검색하면 최상위 연관검색어에 ‘샌드박스네트워크 입사하는 법’이 뜰 정도다. 입사 노하우를 듣기 위한 질문도 상당수다. 샌드박스의 멤버가 되고 싶은 자녀를 둔 부모님들 사이에서는 “직업 1인 창작자가 되려면, 네가 좋아하는 도티님처럼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질 정도다. 도티는 ”대학생들이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꿈의 직장’이라고 말하듯, 요즘 어린친구들 사이에서는 샌드박스 네트워크가 ‘가장 가고 싶은 직장’이 돼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팬을 만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 때마다 ‘저도 샌드박스에 가고 싶어요’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예전에는 세상에 없던 직업인데, 저의 영향으로 어린 친구들의 장래희망이 됐다니 뿌듯하죠. 꼭 1인 창작자가 아니더라도, 창작자를 지원하는 부서나 기획·마케팅 등 ‘1인 창작자’의 세계를 넓혀가는 일을 하려는 친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는 건강하고 좋은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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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창작자 도티(사진 왼쪽)와 잠뜰. /샌드박스네트워크 제공

실제로 도티의 영향을 받아 1인 창작자가 된 이들도 다수다. 샌드박스네트워크 소속으로 개인채널 구독자 수가 90만명에 이르는 ‘잠뜰’은 도티의 방송을 즐겨보는 팬클럽 회장으로 활동하다 1인 창작자의 길을 걷게 된 대표적 인물. 도티의 콘텐츠 제작을 돕던 ‘수현’ 역시 1년 만에 구독자 10만 채널을 운영하는 1인 창작자로 성장했다.

“아이들의 시선은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1인 창작자’라고 하면 ‘그것도 직업이야?’ ‘뭐하는 일인데?’ ‘그런 걸 누가 봐’ 라며 반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산업적으로도 이제 막 태동하는 분야고요. 그렇기 때문에 앞서 길을 닦고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도티’로서의 성공이 개인의 이익에 그치는 게 아니라,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후발주자들의 길을 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가장 뿌듯하죠. 샌드박스네트워크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으니까요.”

도티와 샌드박스네트워크는 1인 창작자의 생태계를 물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대부분의 1인 창작자가 10대 초중반에서 30대 후반까지 비교적 젊은 연령대에 포진된만큼, 아예 소속 창작자들을 관리하고 교육하는 매니저를 따로 뒀다. 별다른 사회경험 없이 어린나이에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창작자들에게 기둥이 돼주기 위해서다. 앞서 간 롤모델이 적은 업계인 만큼, 매니저들은 창작자의 고민을 들어주고 방향을 함께 설정하는 동료이자 멘토의 역할을 하고 있다.

1인 창작자를 지망하는 이들을 위한 오디션 개념으로 ‘샌드박스아카데미(SBA)’도 운영 중이다. 지난해 1기를 모집하고 교육을 마친데 이어 올해 2기를 모집한다. 샌드박스아카데미에 선발되면 채널 브랜딩, 키워드 설정 방법 등을 배우고, 콘텐츠 제작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교육비는 전액 무료이며, 미션 수행을 통해 가능성 있는 창작자를 발굴하면 정식으로 계약도 맺는다. 막연히 1인 창작자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등용문인 셈이다.

콘텐츠 창작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과 ‘사명감’ 역시 강조하고 있다. 자극적인 콘텐츠로 조회수 높이기에만 열을 올린다면,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티는 “내가 업로드한 20분짜리 영상을 100명의 사람이 봤다면, 그 2000분의 시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면서 “콘텐츠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효용가치가 있을지,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일지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1인 창작자의 콘텐츠는 B급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저희들 사이의 용어로 ‘트래픽 장사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돈벌이 수단, 유명세의 도구로만 생각해서 이목을 끌만한 콘텐츠면 그게 뭐가 됐든 찍어내는 거죠. 하지만 1인 창작자가 진짜 업(業)으로 5~10년을 가려면, 성실함은 물론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수백억 예산의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더 가치 있는 20분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그게 새 시대의 인플루언서(influencer·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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