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5일(화)

“지금 사는 공간에 대한 애정, 근대 문화재 보존의 출발점이죠”

도코모모코리아 ‘근대문화유산 지키기’

서울에서 가장 높았던 지하 1층, 지상 6층의 건물. 옥상에는 전광판이 있어 뉴스를 보여주고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던 ‘화신백화점’은 1930년대에 단연 ‘장안의 화제’였다. 일제시대 대표적 한국인 건축가 박길용이 르네상스시대 건축양식을 소화해 지은 화신백화점은 한국인이 주인인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1987년 헐리기 전까지 종로의 랜드마크였던 화신백화점을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 자리에는 종로타워가 세워져 있다.

김종헌 회장은“근대 문화재의 옛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도시개발 계획을 세워 문화와 역사를 일상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도코모모코리아(DOCOMOMO Korea) 김종헌 회장은 화신백화점과 서울시청을 ‘가장 아까운 근대문화재’로 꼽았다. 서울시청 역시 2008년 일부를 철거하고 현재 리모델링 중이다. 근대문화재는 개화기부터 일제 강점기를 포함한 6·25전쟁 전후의 기간에 제작된 건축물이나 생활 문화 자산을 말한다. 한국의 근대 문화재는 일제시대의 잔유물로 여겨진 데다 ‘문화재로 보존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부족해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서 훼손된 경우가 많다.

“광화문 뒤편에 있었던 조선총독부처럼 의도적인 것은 응어리를 풀어줘야 하겠지만, 근대를 일본과 관계된 독립운동사로만 이해할 일은 아닙니다. 일제시대라고 해도 그 상황을 뚫고 살아온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가 있고, 이들의 생각과 생활을 알려면 근대 문화재를 보존해야 합니다”

김종헌 회장이 이끌고 있는 도코모모코리아는 한국의 근대 건축문화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2003년에 만들어진 단체다. 도코모모코리아가 속해있는 도코모모(DOCOMOMO)는 ‘근대의 건물과 환경형성의 기록 및 보존을 위한 조직(DOcumentation and COnservation of buildings, sites andneighborhoods of the MOdern MOvement)’의 줄임말로 1990년 네덜란드에서 생겨난 국제 민간단체다. 김 회장은 “근대 문화재는 다른 문화재에 비해 우리와 시간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일상적이지는 않은 매력이 있다”며 “명동성당이 서양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고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한국 사람 크기에 맞게 작은 벽돌을 쓰는 등 서양의 것을 주체적으로 변형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근대문화재를 일제 잔재, 외국 것으로만 치부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근대 문화재 보존에 있어서의 쟁점은 도시개발 과정, 건물주의 재산권 행사와 상충된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만들어진 지 50년 이상 된 건축물이나 생활 문화 자산 중 역사적 가치가 있는 근대 문화재를 ‘등록문화재’로 보존하는데, 건축물이 등록문화재가 되면 그 안에서 생활은 할 수 있지만 면적의 4분의 1 이상을 변형할 수 없다. 건물이나 땅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개발할 때 생기는 금전적 가치가 그 공간의 역사적 가치보다 우선하게 마련이다. 김 회장은 “한 지방 도시에서 근대 문화재 등록을 위한 조사를 했을 뿐인데 다음에 가보니 문화재등록이 되지 않으려고 입구에 시멘트를 밀어 넣어 망가뜨려 놓은 적도 있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김 회장은 또 “등록문화재가 되면 정부가 세제 혜택을 주고 보수도 해주고 있지만, 훼손할 경우 규제나 처벌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것도 맹점”이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덕수궁 옛 터의 범위를 밝혀내 미국 대사관이 그 터의 일부에 숙소를 지으려는 것을 막았으며, 국군기무사령부를 이전하고 옛 터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전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김 회장은 “최근 근대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많이 생겼다”며 “처음 도코모모코리아가 생겨날 때 근대건축 전문가는 10여명에 불과했는데 올해 8회째를 맞는 ‘도코모모코리아 디자인공모전’에는 1000팀, 3000명 이상이 지원해 국내 가장 큰 건축디자인 공모전 중 하나가 됐다”며 뿌듯해 했다. 이번 공모전은 곧 철거될 부산의 미군부대 ‘캠프하야리아’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김 회장은 근대 문화재 보존을 위해 가장 시급한 문제로 ‘근대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꼽았다. 일본은 지역사회 주민들이 ‘경관보존위원회’를 통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뉴욕이나 파리에서도 오래된 건물은 쉽게 허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동성당이 있으니 작게는 명동 상권이 살고, 크게는 서울 시민들의 자랑거리가 되는 게 아닐까요? 명동성당 덕택에 물질적, 정서적 이익을 보는 시민들이 성당을 보호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새 건물과 신도시, 옛 유적과 고궁만 좋아할 것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이 공간에 대한 애정을 갖는 것이 근대 문화재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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