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금)

웹툰 ‘단지’ 시즌2 시작… 이번 시즌엔 독자들도 함께 화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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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2016, 단지∙레진코믹스>

웹툰 작가 ‘단지’ 인터뷰

“내 기억에 엄마는 항상 우는 나를 나무랐고, 오빠는 나를 조롱했다. 그것이 여러 번, 오랜 기간 반복됐다. (중략) 가끔 어깨를 크게 들썩일 때가 있었는데 아무도 ‘괜찮으냐’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 감정이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다.(웹툰 ‘단지’ 1 13화 中)

엄마, 아빠, 오빠, 동생과 다르게 고양이 귀와 꼬리를 단 모습. 웹툰 속 소녀 ‘단지’는 가족과 함께 있을 때도 마치 혼자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넘어져서 다친 동생을 달랬을 뿐인데 엄마는 ‘아기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며 단지를 욕하고, 오빠가 단지에게 폭력을 휘둘러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리고 서른한 살이 된 단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 세상에 선보인다.

웹툰 작가 단지(필명∙31)의 경험을 담은 동명의 자전 웹툰 ‘단지’는 2015 7월 연재를 시작해 연재가 종료된 지난해 12월까지 누적 조회 수 12000건을 돌파했다. 지난달 6, 단지가 시즌2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그간 이메일과 SNS를 통해 독자들이 보내온 사연 500여 건을 만화로 재탄생시킨 것. 그녀는 왜 다시 펜을 잡았을까. 역삼동 레진엔터테인먼트 본사에서 단지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작품을 시작하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아닐까 한다. 어떻게 ‘단지’를 시작하게 됐나.

“원래 회사원의 일상을 담은 시트콤 형태의 웹툰을 연재할 생각이었다. 기획을 들고 당시 담당자를 찾아갔는데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지 않아?’ 하더라. 그 질문이 계기가 됐다. ‘단지’는 늘 하고 싶었지만 마음속에만 담아뒀던 이야기다. 우연히 친구들에게 제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공감받지 못했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인 만화로 사람을 설득하기로 했다. ‘나는 이때 많이 슬펐다’고.

본인의 아픈 기억을 작품화하고, 세상에 보이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려움은 없었나.

“아픈 과거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4주 정도 휴재를 하기도 했다. ‘단지’는 이전에 다른 이름으로 연재했던 작품에 비해 스토리를 결정하는데 훨씬 많은 시간을 쏟았다. 감정에 휩쓸려 대사가 격해지지 않게 최후의 최후까지 다듬다가 펜을 들었다. 내가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공감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웹툰은 조회 수 1200만을 돌파했고, 단지 이름으로 운영 중인 SNS 팔로어는 3만명이 넘는다. 독자 감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들려달라.

“‘나는 단지 속 오빠입니다’라는 쪽지를 받았다. ‘예전엔 잘못된 것인 줄 몰랐는데, 웹툰을 보고 그동안 여동생에게 상처를 줬다는 걸 알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누군가의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실제로 자각 없이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많다. 내 오빠도 그랬다. 중요한 것은 ‘화해’다. 내 오빠는 어느 날 뜬금없이 ‘맥주 한잔 하자’고 했다. ‘이제 어른이잖아’ ‘어차피 지나간 일인데’라고 말하는 듯한 태도가 본질을 외면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쪽지를 보내준 분께 이렇게 답장을 드렸다. ‘뜬금없이 친근하게 대하기보다, 무엇을 사과하고 싶은지 동생분께 직접 말해주세요’라고.

시즌2에서는 단지와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는 독자들의 이야기가 연재된다. 어떻게 시작된 기획인가.

“시즌1 때 초반부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 쪽지를 많이 받았다. 하루에 100건이 넘는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고 싶었던 사람, ‘아픔’이 맞는지 확인받고 싶은 사람, 이렇게 살고 있다고 세상에 알려주고 싶은 사람. 이유도 사연도 각기 달랐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한을 대신 풀어주자는 생각이었다. 시즌1은 나 한 명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시즌2에서는 최대한 다양한 사연을 담으려 했다. 세상 어딘가에서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접수한 사연 500여 건 중 현재까지 5건을 선정했고, 앞으로도 계속 사연을 받을 생각이다.

시즌1에 비해 더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을 것 같다.

“단지 시즌1은 욕을 하는 독자가 있어도 나 혼자 감당하면 됐다. 하지만 시즌2는 사연자가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된다. 선정된 사연자들과는 2~3시간씩 대면 인터뷰를 가졌고, 웹툰을 그리면서도 수시로 소통하고 있다. ‘아빠의 표정을 이렇게 그려도 될까요’ ‘그때 엄마가 이렇게 말한 것이 맞나요’ 등 세세한 것 하나까지 감수를 받는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느낌이다.

시즌1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이 있었나. 시즌2의 목표는 무엇인가.

“시즌1을 시작하며 나의 상처를 가족에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실제로 그렇게 했고, 연재를 마쳤을 땐 마치 숙제를 끝낸 느낌이었다. 시즌2의 목적은 ‘공분’이다. 사연자들의 이야기에 독자들이 함께 화내주길 바란다. 사연자들 중에는 자신이 겪었던 일이 아픔이라는 걸 모르는 분이 많았다. 가족 중 누구도 그게 잘못된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교 교육을 통해 성폭력이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배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동 학대에 대해서도 그런 측면의 교육이 있으면 좋겠다.

‘단지’는 이제 더 이상 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세상의 단지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 가족에게 고통을 받으면서도 ‘나 하나만 참으면 돼’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있었다. 또 다른 단지들에게 지금 네가 겪는 그 일이, 네가 참았던 그 상처가 ‘당연하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자신을 더 사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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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2016, 단지∙레진코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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