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일(금)

[오승훈의 공익마케팅] ③ 어떻게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오승훈의 공익마케팅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한해 수천 명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장티푸스, 폐렴, 콜레라 등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을 예방하지 못해서다.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의료 지원도 필요하지만, 아이들이 손을 씻게 하는 것이 더 근원적인 해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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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 SOAP 동영상 캡쳐

보통의 경우, 아이들에게 손을 씻어야 하는 이유를 교육하고 손 씻기 운동을 했을 것이다. 광고대행사 ‘Y&R Cape Town’은 지역의 비영리단체 ‘블리키스도르프포호프(Blikkiesdorp4Hope)’와 함께 ‘Hope Soap’라는 새로운 비누를 제작했다. 투명 비누 안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심었다. 비누의 성과는 바로 나타났다. 질병 발생은 70%, 호흡기 질환 감염은 75% 감소했다.

“무엇이 아이들에게 손을 씻게 했을까? 아이들의 행동을 변화시킨 것에는 어떤 원리가 있을까?”

쉽게 유추할 수 있겠지만, 비밀은 장난감이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다. 장난감이라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손을 씻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장난감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효과는 유효했을 것이다.

마케팅은 이것을 ‘혜택(Benefit)’이라고 한다. 구매자, 수요자, 수혜자 등이 어떤 선택과 행동을 했을 때 얻는 이득을 일컫는다. 사람은 자신에게 이득이 생기는 쪽으로 행동하기 마련이다. 이런 성향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교환 이론(Exchange Theory)’이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는 두 가지가 수반된다. 비용과 보상. 행동에 드는 비용보다 보상이 크면 행동을 하고, 낮으면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교환이론의 핵심이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글을 보는 시간이라는 기회비용보다 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을 거라는 판단을 한 후에 클릭하고 글을 읽는 행동을 했을 것이다(이런 이유로 기사의 제목이 중요하고, 낚시성 기사 제목들이 횡횡한다).

상품을 구매할 때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어느 지역 관계자들과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메뉴는 안심 스테이크, 한우 김치찌개, 제육 덮밥 등이었다. 그 식당을 잘 아는 사람들은 안심 스테이크를 선택했는데, 나는 제육 덮밥을 골랐다. 사람들은 그게 맛이 없다며, 내게 다른 메뉴를 추천했으나 나는 꿋꿋하게 버텼다. 이윽고 밥이 나와서 먹는데 맛이 괜찮았다. 그런 나를 보며 관계자 한 분이 ‘저는 그 돈 주고 그거 안 먹어요.’라고 하길레, 메뉴판을 보니 제육 덮밥이 1만8000원이었다. 갑자기 제육 덮밥이 맛이 없어졌다. 가격을 모를 때는 괜찮았는데, 엄청난 가격을 인지한 후에 갑자기 맛이 없어진 거다. 1만8000원이라는 비용보다 더 큰 맛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제육 덮밥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냥 장난감이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 손을 씻게 한 거다. 손을 씻는 귀찮음의 비용보다, 장난감이라는 보상이 더 클 만큼 말이다. 우리가 HOPE SOAP처럼 누군가의 행동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그들이 해야 할 행동은 무엇이고 그 행동에는 어떤 비용이 얼마큼 필요한지 가늠하고 제안을 해야 한다. 손 씻는 것이 얼마큼 큰 대가를 치르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면, 결코 자동차와 헬로키티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가정을 해보자. 만약, 똑같은 비누를 대학생들에게 제안했다면 어땠을까?

비용보다 높은 보상으로 행동을 변화시키려면, 보상을 받는 주체가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좋아하는’이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다. 대학생에게는 장난감이 아니라, 문화상품권이나 뮤지컬 티켓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보상이나 혜택은 그것이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 대상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알아야 그가 혜택으로 느끼는 보상을 제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모두 HOPE SOAP를 좋아할까? 나의 조카만해도 잠시 눈을 돌릴 수는 있겠지만, 행동을 변화시킬만큼 매력적이진 않을 것 같다. 무선 조종 자동차, 컴퓨터 게임과 같은 더 큰 보상이 이미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안하는 혜택을 적중시켜 대상자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면, 그들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 나이, 성별, 가계소득 수준, 지식 또는 학력 수준, 거주 지역과 환경, 성격, 소비 패턴 등등 많이 알수록 적중 확률은 높아진다.

마케팅에 실패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타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타깃을 ‘20~30대 여성’, ‘30대 주부’처럼 정의했다면, 조금 더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 20~30대 여성에는 21세의 여대생도 있고 30세의 주부도 있는데, 이들이 어떻게 같은 혜택을 추구하겠는가. 29세의 직장 여성일지라도 미혼 여성이 있고,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이 있다. 두 타깃 모두 환경을 소비 선택의 기준으로 둘 수 있다. 그러나, 미혼 여성은 지구별의 건강을 위해 환경을 선택하고, 기혼 여성은 아기의 건강을 위해 환경을 선택할 것이다. 타깃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따라 그가 원하는 혜택이 다르다.

또 다른 가정을 해보자. 비누 안에 여전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은 있다. 그런데 투명 비누가 아니라 유색 비누였다면 어땠을까? 혜택은 일반적으로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상상할 뿐이다. 마케팅의 영원한 숙제 중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혜택을 어떻게 잘 보이게 할 것인지다.

옷을 구매하려면 그 옷을 입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한다. 노트북을 선택할 때는 그 노트북으로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식당에서는 음식의 맛을 상상한다. 그 상상에서 긍정적인 혜택이 느껴지지 않으면 다른 대안을 찾는다. 마케팅 계획이 성공하려면 이런 상상을 고객이 아니라 우리가 구체적으로 제안해 주어야 한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이고, 마케팅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힘이다. 누군가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면, 그가 생각하는 비용을 산정하고 그보다 높은 혜택을 명확히 보여주어라.

HOPE SOAP는 손을 씻는 ‘비용’을 구체적으로 이해했고, 그보다 높은 아이들의 ‘보상’을 명확하고 가시적으로 제시했다. 마케팅이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핵심 원리다. 마케팅의 방식이 일반적인 비영리단체의 것보다 우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헬로키티를 가진 아이는 더이상 손을 씻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교육이나 인식의 개선을 통해 아이들을 변화시키면, 장난감이 없어도 아이들은 잘살 수 있다. 어느 것이 나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쯤에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과연,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혜택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는 그 ‘혜택’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알아본다.

마케터.
세 글자로 저를 소개할 수 있는 그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마케팅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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