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아니지만, 지금도 대한민국엔 ‘적자’와 ‘서자’가 있습니다. 보조금을 36억원 횡령한 ㈔한국경제교육협회는 청소년 경제 교육을 장려한다는 명분으로 지금까지 기재부로부터 268억원의 예산을 받았습니다. 설립된 이듬해인 2009년 ‘경제교육지원법’이 만들어져 경제 교육 실시 단체로 지정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적자’ 단체가 우리 사회에는 한두 곳이 아닙니다. 취약 계층 아동 맞춤형 통합 서비스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드림스타트센터’는 2008년 생긴 후 3년 만에 130개로 늘었고, 현재 220곳에 달합니다. 기관당 3억원씩 658억원의 예산이 들어갑니다.
반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서자’입니다. 정부가 아동 학대 문제를 인식하기도 훨씬 전인 1996년 민간단체인 굿네이버스에서 아동학대상담센터를 운영해오며 이 불쌍한 아이들을 보살폈습니다. 1998년 충격적인 ‘영훈이 사건'(영훈이 누나는 부모에게 맞다가 숨진 후 암매장됐고, 영훈이 또한 심하게 맞은 상태로 발견됨)으로 2000년 아동복지법이 만들어져 아동 학대에 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동보호전문기관은 50곳뿐이고, 가해자로부터 위협당하는 상담원 신분은 보호받지도 못하며, 기관 운영 예산은 민간단체와 지자체가 분담합니다. 출생 신분이 관(官) 주도가 아닌, 민(民)이기 때문에 생긴 현상입니다.
내년 예산안 뚜껑을 열어보고, 전국의 아동보호전문기관들이 떠들썩합니다. “더 이상 민간은 아동 학대 문제에서 손을 떼고 아예 국가에 운영권을 반납하자”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이쯤에서 궁금해집니다. 우리나라에서 국가가 할 일과 민간이 할 일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져 있는지 말입니다. 357조원에 달하는 국가 예산을 공무원이 모두 쓰기란 불가능합니다. 공무원은 이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민간단체에 위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성공하면 ‘민관 협력’의 롤모델이 되고, 실패하면 ‘보조금 빼먹는 민간단체 세금 도둑들’이 됩니다.
문제는 수십년 동안 이어져온 구조입니다. 공무원들이 법령을 만들고, 이 일을 시행할 손발이 되는 센터를 만들고, 운영비를 지원하는 것 말입니다. 청소년 경제 교육을 정부 돈으로 해야 할까요, 아동 학대를 정부 돈으로 해야 할까요. 그걸 1차로 기재부가 결정하고, 2차로 국회의원들이 결정하고 나면 뒤바꾸기 힘든 구조. 이런 의사 결정이 계속 폐쇄적으로 이뤄진다면 진정한 국가 개조는 불가능할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