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 협력으로 新항로를 개척하자 <3·끝>
콜렉티브 임팩트·임팩트 투자에 주목한 자원보유자들
인도 여성의 금융 접근성은 지난 10년간 비약적으로 개선됐다. 2011년 여성 은행 계좌 보유율이 26%에 불과했던 인도는 2021년 78%로 대폭 상승했다. 정부가 시행한 금융 포용 정책 ‘프라단 만트리 잔 단 요자나(PMJDY)’ 덕분이다. 잔고가 없는 계좌도 손쉽게 개설할 수 있도록 하면서 보험, 연금, 직불카드 같은 금융 서비스 이용의 문턱을 낮춘 것이 주효했다.
◇ 인도 여성의 금융 접근성을 대폭 개선한 비결은?
이 정책은 인도의 디지털 금융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JAM 프로젝트의 핵심 중 하나다. 전 국민 은행 계좌를 목표로 하는 ‘잔 단(Jan Dhan)’, 개인 식별번호 시스템 ‘아드하르(Adhar)’, 그리고 휴대전화 보급 확대를 뜻하는 ‘모바일(Mobile)’이 그 축을 이룬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콜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에 있었다. 정부, 사회적기업, 기업 재단 등 다양한 주체들이 공통의 목표를 공유하고 협력하며 문제를 해결한 결과다.
JP모건체이스를 비롯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마이클&수잔 델 재단, 메트라이프 재단 등 주요 민간 기관들은 JAM 프로젝트에 8000만 달러(한화 약 1120억 원)를 조성해 힘을 보탰다. 이 자금은 핀테크 사회적기업 50여 곳의 성장을 지원하는 데 쓰였다. 지원받은 핀테크 사회적기업의 저소득 및 중간소득 고객 수는 2200만명 이상이며, 이 중 여성 비율은 50%에 달한다.
기업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2일, 서울대 시흥캠퍼스에서 열린 ‘2024 사회적기업 국제포럼’에서 만니샤 챠다 JP모건체이스 아시아 태평양 지역 글로벌 필란트로피 총괄은 “경제 성장은 더 많은 사람이 누릴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하다”며 포용적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팬데믹을 거치며 금융 시스템이 포용적일수록 경제적 회복력과 성장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다.
JP모건체이스는 한국에서도 소규모 기업과 청년 기업인을 육성하고 있다. 지금까지 470만 달러(한화 약 66억원)를 투입해 소규모 기업 193곳을 지원하며 성장을 돕고 있다.
◇ 록펠러 필란트로피 어드바이저의 사회적기업 육성 공식
록펠러 필란트로피 어드바이저(Rockefeller Philanthropy Advisors, 이하 RPA)는 소규모 단계의 사회적기업들이 주류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주력하고 있다. 흔히 사회적기업이 성장 과정에서 직면하는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을 넘어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RPA의 핵심 전략은 임팩트 투자다. RPA는 사회적기업에 시장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제공하거나, 보증을 서 줌으로써 기업이 외부에서 대출을 받을 때 금리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RPA의 패트릭 브리오 임팩트 투자 책임자는 최근 10년간 미국에서 임팩트 투자가 빠르게 확산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미국 대형 재단의 75%가 임팩트 투자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는 정부의 프로그램 연계 투자(PRI) 지원 정책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PRI는 사회적 임팩트 창출을 주된 목표로 하면서 재무적 성과는 부수적 목표로 삼는다. 미국 내 모든 민간 재단은 자산의 5%를 기부를 제외한 PRI나 보조금, 지원금 형태로 사용해야 한다.
패트릭 브리오 책임은 “PRI는 투자이기 때문에 자금이 순환하며 지속적인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며 “이런 방식은 위험을 덜 감수하려는 자본을 유치하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RPA는 임팩트 투자뿐만 아니라 보조금과 비재무적 지원도 병행한다. 사회적기업이 자립적으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물론, 부족한 전문성을 채우기 위한 다양한 비재무적 자원도 제공한다. 이에 대해 패트릭 브리오 책임은 “RPA는 사회적기업에게 다른 투자자를 소개하거나 임팩트 측정 방법을 공유하는 등 비재무적 지원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있다”며 “예를 들어, 루미나 재단에 투자한 뒤 이사회에 직접 참가하고, 도그우드 헬스트러스트에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법률과 회계 업무를 지원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방한 전 서면으로 더나은미래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패트릭 브리오 책임을 직접 만나 추가적인 질문을 던졌다. 임팩트 측정이 꼭 필요하냐는 질문에 그는 “임팩트 측정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 측정해야 한다”며 “하지만 임팩트 측정이 무조건 엄격한 방식일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측정에 큰 비용을 쓴다고 반드시 정확한 것은 아니며, 동료 사회적기업, 사회과학자, 공공기관 등 주변의 자원을 활용해 측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임팩트 측정을 수행하는 공동체 간의 소통과 학습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사회적기업 생태계에 대한 조언을 요청하자 , 패트릭 브리오 책임은 “한국의 사회적기업 생태계는 탄탄해 보이지만, 정부 보조금이나 초기 지원 단계에서 성장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 공백이 있는 있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촉진적 투자(catalytic investment)’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시흥=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