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7일(토)

제주에 연 전국 최초 장애인 친화 편의점, 직접 가보니

제주도청에서 터미널 방향으로 10분 남짓 택시를 타고 도착한 편의점 앞. 기자를 먼저 반겨주는 것은 완만한 경사로였다. 10kg 캐리어를 끌고 움직이던 기자는 7개의 계단 대신 경사로를 택했다. 휠체어 뿐만 아니라 유아차나 캐리어를 끄는 여행객에게도 편리했다. ‘디귿(ㄷ)’자 모양의 경사로를 30걸음 걸으니 매장 문 앞에 도착했다. 매장 앞에는 손바닥 세 개 크기만한 점자안내판이 있었다. 현 위치, 계단, 카운터까지 편의점 1층을 그대로 옮겨놨다. 점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대략적으로 공간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장애인 친화 편의점인 ‘CU 제주혼디누림터점’ 입구에는 널찍한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채예빈 기자

이곳은 지난달 23일 문을 연 국내 첫 장애인 친화 편의점이다. 오픈한 지 일주일이 지난 지난달 30일, 기자는 직접 ‘CU 제주혼디누림터점’을 방문했다. CU 제주혼디누림터점은 보건복지부와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중증장애인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협력사업으로 만들어진 ‘배리어프리(무장애·Barrier-Free)’ 매장이다.

전국 1호 장애인 편의점으로, 배리어프리 공간으로 꾸며지고 중증장애인이 직원으로 근무하는 CU 제주혼디누림터점을 기자가 직접 방문했다. /채예빈 기자

◇ 휠체어도, 어린이도, 관광객도 모두 편한 공간

편의점이 위치한 곳은 제주혼디누림터(장애인회관) 1층. 바로 옆에는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과 제주도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가 위치해 있었다. 평소 복지관이나 지원센터를 찾는 장애인들이 편의점을 방문하는데 불편함이 줄어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문을 열고 기자의 눈에 가장 먼저 포착된 곳은 비교적 낮은 상품 진열대였다. 1.2m 높이로, 키가 163cm인 기자의 가슴팍까지 왔다. 1.6~1.8m 높이의 다른 매장의 진열대보다 낮아, 휠체어에 앉아서도 진열대의 물건을 고르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한 시민은 전동휠체어에 앉아 진열대 위쪽에 있는 핫바를 집기도 했다. 매대 사이도 휠체어와 유아차도 지나갈 수 있도록 널찍한 편이었다.

CU 제주혼디누림터점의 상품 진열대 높이는 1.2m로, 다른 편의점보다 40~60cm가 낮아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자, 휴게공간과 무인매장이 있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라면 건물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 1층과 2층 매장 벽면 곳곳에 붙여진 도움벨도 눈에 띄었다.

전자레인지와 온수대가 놓인 선반과 무인계산대도 다른 매장보다 높이가 낮았다. 다른 편의점에선 골반 위로 올라오던 선반이 여기서는 허벅지 중간까지 왔다. 휠체어 사용 손님을 비롯해 키가 작은 아이들도 편리하게 계산도 하고, 음식 조리도 가능하리라 싶었다.

◇ 장애인도 당당한 직원이자 지역사회일원입니다

CU 제주혼디누림터점은 보건복지부 특화일자리 시범사업 매장이다. 매장 운영을 맡은 제주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가 두 명의 중증장애인을 고용했다. 장애인 직원 두 명을 포함해 총 네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CU 제주혼디누림터점은 두 명의 중증장애인이 직원으로 근무한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직원 홍원석 씨는 편의점 개소식 때 “CU가 첫 일자리인데 취업할 수 있어 너무 떨리고 좋다”며 “쉽지 않겠지만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직원 김동우 씨 또한 “평소 정리 정돈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편의점에서 매장을 깨끗이 관리할 생각을 하니 너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매장을 관리하는 백지성 매니저는 더나은미래와의 인터뷰에서 “CU 제주혼디누림터점은 단순한 편의점이 아니라 장애인 직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그들의 자립적인 삶을 지원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며 “이 모델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바람을 드러냈다.

BGF리테일, 보건복지부, 한국장애인개발원이 함께 8월 23일 전국 1호 장애인 편의점인 ‘CU 제주혼디누림터점’을 오픈했다. /채예빈 기자

한편, BGF리테일, 보건복지부, 한국장애인개발원이 협력하는 장애인 편의점은 점차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10월 말에 2호점인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점이, 연내에 3호점 부산글로벌테크점이 문을 연다.

제주=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yev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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