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1일(금)

‘쓰레기’의 변신은 무죄… 순환경제부터 주민친화시설까지

‘쓰레기’는 지구의 오랜 숙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1340만 8846톤이며, 폐기물 일평균 발생량은 2020년부터 50만 톤을 넘어섰다. 5톤 트럭 10만 개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양이다. 쓰레기 처리 시설은 악취 등으로 ‘기피 시설’이 되어 입지 확보부터 난항을 겪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변신’으로 돌파구를 찾은 곳들이 눈에 띈다. 페트병이 플라스틱 원료인 ‘플레이크’로 변하고, 기피시설이었던 쓰레기 소각장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지난 9일 기후변화센터의 클리마투스 플라스틱 특강 현장견학으로 다녀온 수퍼빈 아이엠팩토리와 하남 유니온파크에서 ‘쓰레기’의 변신을 직접 목격했다.

◇ ‘쓰레기가 돈이 된다’ 순환경제 만드는 수퍼빈 아이엠팩토리

경기도 화성시 소재의 수퍼빈 아이엠팩토리는 재활용 플라스틱 원료를 만드는 공장이다. 지난해 4월 약 3000평 규모의 대지에 본동, 수처리동, 지원동 세 개의 건물을 세워 준공을 완료했다.

수퍼빈 ‘아이엠팩토리’ 공장의 모습. /수퍼빈

아이엠팩토리 입구에는 숲이 있다. ‘공장이 품은 작은 숲’이라는 이름의 숲은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서 버려질 위기에 처한 나무”가 모여있다는 설명이 적힌 팻말이 있다. 공장은 숲을 가운데 두고 에워싼 U자 형태의 모습이다. 아이엠팩토리 견학 안내원은 “어느 공간이든 큰 창을 둬 어디에서나 숲을 바라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작점에서는 영락없이 ‘쓰레기’였던 페트병은 ▲투입 ▲인공지능 선별 ▲분쇄 및 비중세척 ▲온수세척 ▲건조 ▲포장 등의 공정을 거쳐 플라스틱 원료인 ‘플레이크’가 된다.

수퍼빈 아이엠팩토리의 공정 상세 과정 이미지. /수퍼빈

아이엠팩토리는 이 모든 과정을 유리창으로 관람할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 만들었다. 먼 거리지만 페트병이 플라스틱 원료가 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유리 벽면에는 현재 어느 공정 단계인지 설명이 적혀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공정은 ‘인공지능 선별’ 과정이었다. 네 대의 카메라를 통해 인공지능이 수퍼빈이 모아온 ‘쓰레기’가 투명 페트병인지 이물질인지를 골라냈다.

전시 공간에는 해당 인공지능 프로그램 탑재된 카메라가 ‘기념사진 촬영 공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관람객은 너도나도 카메라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화면에 비친 얼굴에는 금방 네모난 테두리와 함께 ‘person(사람)’이라는 문구가 떴다. ‘와’ 탄성과 함께 화면을 찍으려 휴대 전화를 드니 어김없이 ‘cell phone(휴대 전화)’ 문구가 나타났다.

관람객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탑재된 카메라 화면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기후변화센터

공정 상세 과정을 관람한 뒤에는 선별과 세척, 건조 공정 끝에 탄생한 플레이크를 볼 수 있었다. 플레이크(flake)란 잘게 부순 플라스틱으로 재활용 플라스틱의 원료가 된다. 이 플레이크를 녹여 알갱이 모양으로 만들면 펠릿(pellet)이 된다. 펠릿은 시험관 모양의 프리폼(preform)을 거쳐 페트병이 된다.

전시 공간에는 플레이크, 펠릿, 프리폼, 페트병을 둬 폐페트병이 계속 재활용되는 ‘보틀 투 보틀(bottle to bottle)’ 구조의 모든 단계를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도록 했다. 플레이크는 재활용 섬유로 변해 옷, 모자부터 솜, 부직포로도 활용됐다. 다양한 모습을 거쳐 돌아온 페트병을 보니 ‘순환’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수퍼빈은 순환자원 회수로봇 ‘네프론’을 통해 페트병을 모으고 있다. 네프론은 페트병과 캔 등 자원이 될 수 있는 쓰레기를 회수하고 보상을 제공한다. 아이엠팩토리에는 네프론에 직접 페트병을 넣어보는 체험 공간도 마련됐다. 체험을 위해 마련된 페트병 통은 금세 동이 났다.

수퍼빈이 수거한 페트병이 묶여있는 모습. /김규리 기자

현장견학 참가자들이 “수익이 어떻게 나느냐”며 궁금해했다. 우지선 수퍼빈 책임은 “네프론과 플레이크를 판매해 수익을 얻고 있으며 이제 막 해외 수출도 시작한 상황”이라며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 순환경제에 기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유럽의 경우 2019년 발표한 ‘EU 일회용 플라스틱 지침(SUPD)’에 따라 2030년까지 EU 역내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페트병에 최소 30%의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맞춰 환경부는 지난해 ‘자원순환분야 업무계획 중점 추진 과제’를 통해 플라스틱을 연 1만 톤 이상 생산하는 업체는 재생 원료를 3% 이상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 기피 시설에서 주민 친화 시설로 변신한 하남 유니온파크

경기도 화성에서 1시간 30분 가량 ‘수소 버스’를 타고 하남에 도착해 마주한 풍경은 예상 밖이었다. 푸른 잔디광장에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산책하는 모습이 보이고, 물놀이장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렸다. 그 가운데 105m 높이의 우뚝 선 유니온타워는 ‘랜드마크’로 손색없는 모습이었다.

언뜻 보면 주민 친화 시설처럼 보이는 이곳, 유니온파크에는 반전이 있다. 바로 ▲소각시설 ▲음식물 자원화시설 ▲재활용선별시설 ▲하수처리시설 등이 마련된 ‘복합 환경기초시설’이다.

하남 유니온파크 전경. /하남시

“까르르”, 물놀이에 열중하는 10여 명의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유니온타워에 들어섰다. 기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유니온파크가 한 눈에 들어오는 입체모형이었다. 지상 모형에는 테니스장, 농구장, 게이트볼장 등 다양한 체육시설과 공원이 있었다.

하남 시민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설명까지 들으니 평범한 ‘좋은 공원’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 옆에 놓인 지하 모형을 보고 나서야 이곳으로 견학을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하에는 여러 ‘환경 시설’이 모여있었고, 전망대 역할만 하는 줄 알았던 유니온타워는 사실 처리 시설의 ‘굴뚝’이었다.

하수·폐기물 처리시설을 전면 지하화한 것은 유니온파크가 국내 최초다. 유니온파크 현장견학 안내 직원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최초 사례라 기네스북에 올리려고 했지만 재정 문제로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유니온파크에서는 하루 최대 48톤의 폐기물과 50톤의 재활용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80톤, 하수 3만 2000톤을 처리할 수 있다.

악취가 나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것도 잠시, 지하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건물 지하로 내려가고 나서야 약한 냄새가 느껴졌다. 안내 직원은 “악취 관련 민원은 여름철에 두세 건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강조했다.

비결은 꼼꼼한 악취 처리 시스템이다. 폐기물을 옮기는 차량은 지하 출입구 하나로만 이동하며 6단계의 밀폐 차단문을 거치고, 지하 처리시설을 음압 상태로 유지한다. 바깥 공기만 들어오고 내부 공기는 나오지 않는 구조다. 외부로 공기가 나가는 곳은 105m의 굴뚝이 유일하다. 안내 직원은 “사실 현재 유니온파크 5분 거리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며 “주민으로서도 악취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악취 처리 시스템의 효과를 실감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스티로폼을 처리해 만든 연료 ‘인고트’와 비닐로 만든 ‘고형연료’의 모습. /김규리 기자

지하에 마련된 견학 공간에는 시설 현장을 볼 수 있는 유리창과 함께 처리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연료 등이 있었다. 안내 직원은 “음식물쓰레기를 건조사료로 만들어 연평균 1억원의 수익을 창출한다”며 “스티로폼·비닐 등도 고형연료 등으로 가공해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설의 굴뚝 역할을 하는 유니온타워 전망대로 향했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전망대에서는 북한산부터 하남시청, 팔당대교까지 하남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평일 오후 시간대였음에도 전망대에는 시민 10여 명이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피 시설’이었던 환경처리시설 유니온파크 바로 앞에는 아파트 등의 거주 시설과 복합 쇼핑몰이 있다. 안내 직원은 “가끔 견학을 와서 복합 쇼핑몰을 보고 ‘저것도 다른 처리시설이냐’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민의 생활공간으로 변신한 처리시설이 복합 쇼핑몰마저 그 일부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하남 유니온타워 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 /김규리 기자

폐기물 처리시설을 전면 지하화하는 아이디어는 서울에도 확산됐다. 지난 2월 서울 관악구와 동작구는 폐기물 시설을 전면 지하화하는 내용의 ‘동작·관악 공동자원순환센터 건립 지방자치단체 조합’ 설립협약을 맺었다. 수퍼빈도 올해 알갱이 모양의 재생원료 펠릿을 만들기 위한 아이엠팩토리 2호를 전라북도 순창군에 세우고 있다. 앞으로도 쓰레기의 ‘변신’은 계속될 전망이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kyurious@chosun.com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