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0일(화)

대기업은 숨기는 사실까지 적는 어느 소셜벤처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의료 AI 스타트업 노을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뉴노멀이 됐지만, 충분히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나타내는지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ESG 성과를 과장하거나 부정적 영향은 숨기는 경우가 많아, 실제 경영 상황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 이 중 한 소셜벤처가 대기업과 사뭇 다른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2022년 3월, 기술특례 제도를 통해 코스닥에 상장한 의료 AI 소셜벤처 노을(Noul)이다.

소셜벤처 노을은 올해 4번째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 2023-2024 ESG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도 긍정적·부정적 성과를 함께 명시했다. /노을 지속가능성 보고서 2023-2024 갈무리

◇ 불리한 데이터도 공시, ‘균형있게 보고하는 것’이 신뢰를 높인다

“자화자찬만 하는 보고서는 과장된 광고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면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어 기업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안정권 노을 CSO).”

노을은 보고서에서 전년 대비 환경 지표가 악화된 점을 솔직하게 밝혔다.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한 결과, 2023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년보다 8.2% 늘었다는 것이다. 이에 노을은 사업 기회가 늘어나면서 제품 생산 공정으로 인한 전기 사용량이 늘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사무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점심시간 사무실 조명 소등, 퇴근 시 냉난방기 전원 차단 등 에너지 절약 노력으로 전체 인원은 증가했지만 전년 대비 약 14.3% 감소했다고 밝혔다.

노을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본문’에서 2023년에 전년 대비 온실가스가 8.2% 증가했다고 밝혔다. / 노을 지속가능성 보고서 2023-2024 갈무리

중간 관리자급 남녀 비율 차이가 작년보다 벌어졌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러면서 ‘노을 또한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유리천장 문제의 직간접적인 영향 범위에 있다’라고 외부 요인을 파악했다. 이어 여성 리더십 역량 강화를 위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노을은 보고서를 작성할 때 ‘불리한 데이터도 적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안정권 노을 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는 “부정적인 이야기도 다루면서 균형성을 지키는 게 기업 신뢰도와 평판을 높이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명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으면 그 사실 또한 알린다. 여성 평균 임금이 남성 평균 임금의 81% 수준이며, 남성 구성원의 평균 경력 연수가 여성보다 5년가량 높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수집하고 있지만, 데이터 심층 분석을 통한 시사점까지는 아직 발굴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단순하게 지표만 공개하는 대신, 지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까지 조사했다.

올해는 균형성을 더욱 보완하기 위해 보고서에 ‘Challenges & Plans’ 부분을 신설했다. 파트별로 잘 못하고 있는 부분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따로 적는다. 이은진 노을 지속가능성 CL은 “처음 보고서를 쓸 땐 자기도 모르게 성과 사례를 주로 쓰게 되기 쉽다”라며 “보고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장치를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짜’ 개선점을 찾는다

노을은 직접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작성한다. 많은 기업이 컨설팅 회사에 외주를 맡기는 것과 대조된다. 안정권 CSO는 “우리 회사의 지속가능성에 관련된 보고서 작성을 남에게 맡긴다는 것 자체가 보고서 발간 취지와 멀어졌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직접 보고서에 들어갈 내용을 정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직접 보고서를 작성하는 만큼, 개선해야 할 점도 명확하게 짚을 수 있다. 특히 업무 환경, 안전 의식 등 구성원과 관련된 항목에서는 ‘정기적인 설문조사’도 진행한다. 보고서에 자랑할 만한 ‘만족도 100%’ 결과를 적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현재 우리 구성원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해당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진짜 안전 의식이 높아졌는지’ 등을 물어보고, 만족도가 낮은 개선 고려 항목까지 도출한다.

노을은 ‘구성원의 업무 몰입도와 행복감’에 대한 정기적인 서베이를 바탕으로 개선 고려 항목을 도출한다. / 노을 지속가능성 보고서 2023-2024 갈무리

노을은 대부분의 기업이 실시하는 외부 검증을 현재 실시하지 않는다. 큰 비용이 들기에 기업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외부 검증 대신, 내용 자체의 진정성을 높여 보고서의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그럼에도 검증은 중요한 절차라는 인식 아래 기업의 규모가 성장하면 앞으로 외부 검증을 도입할 계획이다. 내년 보고서에는 정부 지원 사업을 통해 온실가스 외부 검증을 받는다.

안정권 노을 CSO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의무나 부담으로 여기지 않으니 보다 보고서를 통해 이해관계자들과 더 진정성 있게 소통할 수 있다”면서 “기업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줄 때 우리가 지속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yev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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