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책임지는 기후기술 연구자를 지원합니다”

“미래 책임지는 기후기술 연구자를 지원합니다”

현대차정몽구재단 그린소사이어티

기후기술 R&D에
2029년까지 180억원

기술 고도화·사업화까지
VC 연계로 창업 지원

국제사회는 기후변화를 ‘그린 스완(Green Swan)’으로 규정한다. 발생 시기와 영향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반드시 일어날 위험이라는 뜻이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제6차 종합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40년이면 온실가스 배출로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오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2020년 ‘그린 스완’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가 세계경제에 큰 충격을 주고 금융 위기까지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변화를 늦추고 그린 스완에 대비하는 ‘기후 기술(climate tech)’은 연구실에 있다. 전 세계 기후 기술의 4분의 3이 아직 실험실에 머물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기술들을 사회로 나오게 하려면 연구·개발(R&D)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은 지난달 기후 기술 연구자들을 육성하는 ‘그린 소사이어티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국가녹색기술연구소와 협력해 기술 개발과 기업가형 연구자를 키우고 창업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취지다. 프로젝트 슬로건은 ‘Lab to Society’(연구실에서 사회로)다. 재단은 그린 소사이어티 프로젝트에 2029년까지 총 180억원을 투입해 18개 연구 과제를 지원한다.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은 “기술 R&D 투자와 사업화 지원으로 기후 기술 혁신 기업을 15개 이상 만들고, 유니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재단은 기존 사업들을 재정비하면서 인재·공간·지식 등 세 부문으로 구분되는 ‘3대 플랫폼 사업’을 완성했다. 구체적으로 장학 사업인 ‘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으로 대표되는 인재 플랫폼을 구축하고, 서울 중구 명동 ‘온드림 소사이어티’에 펠로와 혁신가들이 모일 수 있도록 공간 플랫폼을 마련했다. 그린 소사이어티 프로젝트는 지식 플랫폼 역할을 한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은 지난 15일 서울 중구 온드림소사이어티에서 '그린소사이어티' 출범식을 열고 프로젝트 참여 연구자들에게 그린소사이어티 증서를 수여했다. /현대차정몽구재단
현대차정몽구재단은 지난 15일 서울 중구 온드림소사이어티에서 ‘그린소사이어티’ 출범식을 열고 프로젝트 참여 연구자들에게 그린소사이어티 증서를 수여했다. /현대차정몽구재단

회색지대를 지원하라

우리나라 기초 R&D 투자는 정부 주도로 이뤄진다. 지난해 국가 R&D 예산은 28조6801억원 규모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집행하는 연간 R&D 지출(약 19조원)보다 많다. 지난 7일 국가 녹색기술 연구소에서 발표한 ‘기후 기술 국가 연구개발 사업 투자 현황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기후 기술 분야 R&D 투자 총액은 3조9073억원이다. 전년 대비 약 15%(5119억원) 증가한 수치다. 글로벌 회계 컨설팅 그룹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1년까지 기후 기술 분야 누적 투자금은 2220억달러(약 287조원)에 달한다.

문제는 지원 기초 연구와 사업화 단계 사이의 공백이다. 기술 발전 척도인 기술 성숙도(TRL)는 기초 연구(1~2단계)부터 사업화(9단계)까지 총 9단계로 구분된다. 기초 연구에는 정부 출연 연구소와 대학 차원의 투자가 이뤄지고, 상용화 단계에 이르면 대기업과 벤처캐피털(VC)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 기술 가능성을 검증하고 신뢰성을 평가하는 중간 단계에는 제대로 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른바 ‘R&D 회색지대(Gray Zone)’다. 이 때문에 연구비를 조달하지 못해 3~5년 진행되던 연구가 중단되는 경우도 많다. 정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하나의 기술이 사회에 적용되는 데 보통 10년은 걸리는데 그 과정에서 연구비를 확보하고 논문도 써야 하기 때문에 연구자들의 부담도 상당하다”며 “특히나 대내외 환경이 급변하면서 정부 출연 연구소에서도 기술의 가능성을 대규모 실증으로 증명해야 상용화 단계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린 소사이어티 프로젝트는 회색지대에 놓인 기후 기술을 상용화 단계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이번에 선정된 연구 과제는 9개다. 구체적으로 기후 부문에는 성태현 휴젝트 CTO, 유성종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황동수 포스텍 교수, 정다운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등 5명이 선정됐다. 자원 부문에는 강지성 한국그리드포밍 대표, 박철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뽑혔고, 생태 부문은 이우균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 박재홍 코드오브네이처 대표가 지원받게 됐다.

재단은 단순 논문 성과보다 기술의 실용화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연구자를 선발했다고 밝혔다. 특히 기후·자원·생태 분과 외에 기후 기술 사업화 분과도 별도로 마련했다. 재단과 현대차그룹의 자원을 활용해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연계하고, 기술 개발이 창업으로 이어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세계 혁신가들이 주목하는 기후 기술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을 찾고 있다. 상금은 1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1320억원이다. 머스크는 지난 2021년 엑스프라이즈 재단을 통해 ‘탄소 제거(Carbon Removal)’ 대회를 열었다. 조건은 매년 탄소 1000t을 포집하고 최소 100년 동안 격리할 수 있는 기술이다. 전 세계 5000팀이 참가한 대회의 최종 우승팀은 2025년 4월 22일 지구의날에 발표된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도 기후 기술 개발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게이츠가 설립한 기후펀드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캐털리스트(BEC)’는 기후 기술 연구 개발 프로젝트에 150억달러(약 19조78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BEC의 중점 투자 분야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하는 기술 ▲재생에너지에 유래 전력으로 생산하는 그린 수소 ▲지속 가능한 항공유 ▲에너지 저장 기술 등이다. 최근 BEC는 미국 친환경 에너지 기업 인피니움에 7500만달러(약 970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인피니움은 CCS 기술로 포집한 이산화탄소로 바이오 항공유를 생산하는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다.

재단 설립자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도 R&D 투자만큼은 강한 의지를 보였다. 지난 2015~2018년에 현대차는 R&D 분야에만 31조6000억원을 쏟아부었다. 100년 이상 지속 성장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기술 경쟁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정몽구 회장 의지가 반영된 결정이다. 현대차는 미국, 유럽, 인도 등 전 세계 주요 거점에 글로벌 R&D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경영 철학은 재단의 방향성에도 반영됐다. 재단은 “R&D 사업의 핵심은 긴 호흡의 장기 지원”이라며 “모든 기술이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없는 만큼 사업화에 실패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기후 기술 발전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미래 책임지는 기후기술 연구자를 지원합니다”

미완의 기술에 도전한다

“이 기술은 개념만 제시됐고, 전 세계에서 실현된 바 없습니다.”

이번 그린 소사이어티 프로젝트에 참여한 정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바이오 매스를 이용한 탄소 중립 바이오 항공유를 개발하고 있다. 항공 부문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를 차지한다. 연간 규모로 따지면 약 10억t 수준이다. 자동차는 화석연료에서 전기에너지로 빠르게 전환 중이지만 항공기 사정은 다르다. 항공기 운항에 적용하기에는 배터리 기술이 받쳐주지 못하고 가격도 한 대에 최소 1000억원이 넘어 20년 정도는 운영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석유화학 공정을 거치는 항공유를 친환경 연료로 대체하는 게 대안이다.

정헌 책임연구원은 “폐식용유를 재활용하는 기술은 원료 수급이 어렵기 때문에 바이오매스 가스화·액화 개발 기술이 대안이 될 수 있다”며 “현재 개발 중인 기술은 SAF 항공유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전력도 생산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도심 공원에서 보행자의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기술도 연구 중이다. 스타트업 휴젝트는 공원 바닥에 보도블록처럼 생긴 ‘에너지 트리’를 설치하고 보행자들이 밟을 때마다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기에너지는 조명에 공급되고 겨울철에 쌓인 눈을 녹이는 제설용 열에너지로도 변환된다. 성태현 휴젝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나무 한 그루가 1년간 이산화탄소 1t을 흡수하려면 1000㎡의 면적이 필요하지만 에너지트리는 3분의 1 면적에서 같은 효과를 낼 수 있고 보행자들의 이동에 불편을 주지도 않는다”며 “현재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단계에 있는데 내년쯤 시제품을 제작하고 사업화 준비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재단은 기술 연구비 지원을 포함해 해외 연수와 대중 세미나, 연구자 네트워킹도 동시에 지원한다. 권오규 현대차정몽구재단 이사장은 “그린소사이어티를 통해 기후변화 문제에 책임 있게 대응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쉽지 않은 길을 나서는 연구자들이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기후변화를 기업가 정신으로 대응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일요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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