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2일(목)

“세상을 위해 분투하는 비영리 활동가를 응원합니다” [체인지온 컨퍼런스]

다음세대재단 ‘체인지온 컨퍼런스’ 30일 개최
올해로 16년째, 비영리 관계자 400명 참석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조명이 켜지고, 음악 소리가 행사장을 가득 채웠지만, 무대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체인지온 컨퍼런스는 올해도 ‘관계자 없는 개막식’으로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비영리단체 활동가 모두가 이번 행사의 주인공이라는 취지다. 잠시 후 무대 위 대형 스크린에는 이날 참석한 수 백명의 이름이 나타났다. 박수와 환호 속에서 하나 둘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현장을 즐겼다. 활동 경력이 1년이 채 되지 않은 주니어 활동가부터 한국 시민사회 역사를 함께 걸어온 베테랑까지 모두가 하나 되는 자리였다.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다음세대재단과 카카오임팩트재단이 주최·주관하는 체인지온 컨퍼런스가 열렸다. 체인지온 컨퍼런스는 공익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들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사회변화의 원동력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다. 2008년부터 다음세대재단 주도로 매년 개최돼 올해로 16회를 맞았다. 현재까지 체인지온 컨퍼런스는 서울, 부산, 제주 등 6개 도시에서 개최됐고, 누적 참가자 수는 4800명에 달한다. 이번 현장에는 비영리활동가 400여 명이 참석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2023 체인지온 컨퍼런스'가 개최됐다. 올해로 16회를 맞은 이번 행사에는 비영리 관계자 400여 명이 참석했다. /다음세대재단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2023 체인지온 컨퍼런스’가 개최됐다. 올해로 16회를 맞은 이번 행사에는 비영리 관계자 400여 명이 참석했다. /다음세대재단

올해 컨퍼런스 주제는 ‘분투(奮鬪)-온 힘을 다해 나아가다’다. 전 세계가 마주한 복잡 다변해진 사회문제 속에서 비영리 단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고,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3개 세션으로 마련됐다. 권난실 다음세대재단 사무국장은 환영사에서 “전쟁과 차별, 기후위기 등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비영리 단체들의 ‘분투’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오늘 행사에서 여러 언어로 자신의 영역에서 묵묵히 분투해 나가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분투에 필요한 지속적인 힘을 찾아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역사 속에서 찾는 ‘분투의 원동력’

1부는 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가 ‘분투를 망설이는 당신에게: 당신의 길, 비영리의 길’이라 주제 강연으로 시작됐다. 최 교수는 한국의 비영리단체, 시민사회의 역사를 크게 세 구간으로 나눠 설명했다. 그는 “1기는 한국전쟁부터 민주화까지, 2기는 민주화 이후부터 2010년대까지, 3기는 현재까지의 비영리단체의 이야기”라며 “1기에는 국가와 개인이 모두 가난하다 보니 빈곤, 교육 등의 공백을 해외 원조로 해결했지만, 점차 경제가 발전하면서 비영리단체들이 공백을 메우기 시작해 국가 복지의 대리자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1기가 비영리 토양을 비옥하게 했다면, 2기는 국내 비영리 영역이 본격적으로 꽃 피우던 시기다. 최 교수는 “2기에서는 여성, 젠더, 환경, 복지, 노동 등에 걸쳐 세분화된 비영리단체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오늘날 비영리단체 생태계, 시민사회를 다지는 기반이 모두 이 시기에 태동했다”고 설명했다.

“성공적으로 한국사회를 이끌었던 비영리, 시민사회가 3기에서는 조금씩 위축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디지털의 등장으로 연결은 쉬워졌지만, 역설적으로 고립 문제가 강하게 등장하기도 했죠. 또 기후변화와 같은 거대 행위자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자원을 필요로 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시민분투가(Civic entrepreneur)’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민분투가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서 ‘우리’라는 가치를 잃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지속적으로 고립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연결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비용은 부담하지만 혜택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비합리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이런 분투가들 때문에 민주주의가 태동하고, 사회시스템이 마련되고 작동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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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현대 자본주의의 위기는 국가와 시장에 비해 약화된 시민사회 때문”이라며 “현재까지 돌봄 등의 역할을 대리했던 시민사회와 그 핵심 주체였던 비영리기관들은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한다”고 말했다. /다음세대재단

두 번째 연사로는 김영민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공부를 위한 분투, 분투를 위한 공부’를 주제로 무대에 올랐다. 세계적인 학자들의 눈을 통해 본 분투의 전략을 살펴보고, 오늘날 비영리 활동가들의 분투 전략을 고민해보는 자리였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자원은 한정돼 있다 보니 제 몫을 챙기기 위해 항상 투쟁해야 하는 거죠.” 김영민 교수는 토머스 홉스의 이론을 인용하면서 “사회질서가 없는 자연상태에서 모든 인간은 만인에 대한 전방위적 투쟁 상태에 놓인다”고 했다. 하지만 물리적인 투쟁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인류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제임스 스콧은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민중봉기를 살펴보며 새로운 통찰을 얻습니다. 바로 민중봉기의 핵심은 물리적인 투쟁이 아닌 일상 속에서의 미시적인 투쟁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민중은 조용히 관리자 욕하기, 폐업하기, 근무시간에 졸기 등으로 지배세력을 괴롭혀왔고, 이는 물리적인 투쟁보다 효과적이라는 결과에 도달합니다. 이것이 바로 약자의 무기(Weapons of The Weaks)입니다.”

김영민 교수는 효과적인 투쟁 전략으로 ‘멋진 존재 되기’를 꼽았다. 그는 “상대방의 상상 속에서 이뤄지는 이데올로기 투쟁은 유혈사태와 비용을 아낄 수 있다”며 “이러한 효과적인 전략 속에서 우리는 멋진 존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목적 없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영민 교수는 “효용을 알 수 없는 공부는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결국엔 자신만의 무기를 만드는 기반이 된다”고 말했다.

“AI 시대, 비영리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두 번째 세션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싸움의 기술’에서는 기술과 비영리단체의 관계를 살피고 현재 비영리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지점을 진단했다. 이번 세션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기술은 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 ‘챗GPT(Chat GPT)’다. 생성형 AI 챗GPT는 문서 작업을 대신하고, 필요한 이미지를 만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진실은 우후죽순 생성된 정보에 가려지기도 하고, 인간은 기술에 종속돼 자율성을 잃기도 한다. 이런 현상 속에서 비영리 활동가들은 어떤 힘을 길러야 할까?

박새롬 울산과학기술원 산업공학과 교수는 “AI가 생성한 글이나 이미지 등 콘텐츠의 안정성을 위해 폭력성, 선정성, 혐오 등을 배제하는 기술 역시 동시에 개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세대재단

박새롬 울산과학기술원(UNIST) 산업공학과 교수는 ‘모두를 위한 안전한 AI를 만들어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 교수는 “AI 기술 발전은 의료, 운송,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오고 있지만, 발전과 맞물려 AI 기술의 신뢰성에 관한 불확실성과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마이크로소프트와 페이스북의 메타 등 인공지능 개발에 열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들에 경우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능적인 측면이 아닌 개발 과정에서 얼마나 정의롭고 공정한지도 함께 연구하고 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또 AI의 윤리적인 원칙이 강화되려면 기술개발자뿐 아닌 시민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다양한 활용성을 지닌 AI는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결국 인간의 몫”이라며 “AI가 안전하고 윤리적으로 사용되려면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시민사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무대에 오른 이상욱 한양대학교 철학과·인공지능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를 재편한 AI의 그림자를 조명했다. 이상욱 교수는 “최근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지던 영역에서 AI가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면서 많은 매체 등을 통해 대량 실업 사태에 대한 내용을 접할 수 있다”며 “엄밀히 말하면 고임금 전문직과 저임금 육체노동직을 제외한 나머지 중간 분야 일자리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AI가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이유로 세 가지 낯선 특징들을 꼽았다. “AI는 의식적 경험의 부재, 이해할 수 없는 실패, 몸이 없는 사이버 존재라는 세 가지 낯선 특징으로 인해 인간 영역의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없다”며 “친절함, 무뚝뚝함, 퉁명스러움 등 인간이 가지는 뉘앙스를 기술적으로 활용할 지 몰라도, AI는 의식적인 경험을 할 수 없는 존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I 리터러시(Literacy·문해력)를 강조했다. “AI를 통해 우리는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자유로운(free) 선택과 자율적인(autonomous) 선택을 구분해야 합니다. 자율주행차의 경우도 운전자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인간의 자율성이 있지는 않기 때문이죠. 결국 자율주행차는 단순히 운전자 없는 차입니다. 기술의 진보 속에서 포용적인 AI 기술을 개발하려면 결국 문해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통적인 학자들의 통찰을 달달 외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디지털화가 여러 분야에 적용되듯이 인간도 여러 분야를 통찰할 수 있는 시각을 갖춰야 합니다.”

음악가 하림은 “역사적으로 많은 투쟁에는 음악이 함께 있었다”며 “음악은 우리가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언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세대재단

마지막 세션은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분투하는 비영리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과 위로를 나누기 위해 마련됐다. 글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정혜윤 CBS 라디오 PD와 노래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하림이 무대를 채웠다.

정혜윤 PD는 “분투에는 나 자신과의 분투, 경제적인 문제와 정체성의 충돌에서 오는 분투, 믿음과 이성의 충돌 등 세 가지가 있다”며 “이런 분투 속에서 삶을 살다 보면 지쳐버리기 쉽다”고 말했다. 이어 “나 자신이 무의미해지지 않으려면, 지금 하는 일을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고된 자의식과 고도의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진 무대에서는 음악가 하림의 ‘함께 부르는 노래의 힘’ 강연이 이어졌다. 하림은 “오늘날은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음악들이 가득하지만, 노래의 본질 속에는 분투하는 양분이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은 오랜 시간 전부터 생존, 인종 차별, 노동의 부조리함으로부터 맞서 싸우기 위해 함께 노래해 왔다”고 말했다.

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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