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활동가들을 보면 부러웠다. 연륜과 경험, 빠른 정세 분석, 마이크를 잡기만 하면 청산유수로 흘러나오는 발언, 필요하면 뚝딱 써내는 성명서와 논평….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부러웠던 건 선배들의 끈끈한 연대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서로 돕고, 당연하게 의지하고, 든든하게 일을 나누는 연대. 선배들의 연대는 업무적인 연대를 넘어서서 정서적인 지지가 되기도 했다. 평일에는 업무 연대로 만나고, 주말에는 취미를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며 ‘동료’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나는 너무 부러웠다. 나에게도 그런 동료가 필요했다. 힘들 때 손을 내밀 수 있고, 당연하게 그 손을 잡는 끈끈한 연대가 필요했다.
청년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찾았다. 처음에는 그런 자리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직접 기회를 만들어 봤다. 그렇게 시작된 ‘청년기록단’의 ‘요즘 것들 이야기’는 총 11명의 청년 활동가를 만나 인터뷰하는 프로젝트였다.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가장 좋은 기억은 무엇인지, 어떤 것들이 어렵고 힘든지, 그런데도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지속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두 시간은 기본이고, 네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비슷한 경로로 활동을 시작했고,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며, 비슷한 것들을 활동의 원동력으로 꼽고 있었다.
청년 활동가들은 세월호 참사,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 경험하며 거리로 나와 행동했고, 그 행동의 경험이 현재의 활동까지 이어지게 했다고 말했다. 활동하면서는 조직 내에서 느끼는 소통의 문제와 가족·지인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한다는 외로움, 열악한 노동환경과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등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활동을 지속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는 11명 중 9명의 활동가가 ‘활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답했고, 각자 하고 싶은 활동에 대해 고민하며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활동가들은 ‘동료의 존재’와 ‘내 활동의 가치’를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답했다. “서로 만나고, 활동가로서 연대감을 느끼면 계속 (활동을) 할 수 있죠. 그런데 이런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사람도 한정적이잖아요. 저연차 활동가일수록 기회가 없고.” 인터뷰 중에 만난 청년 활동가들은 활동가들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네트워크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직의 변화나 안정적인 활동 조건, 사회적 안전망 외에도 ‘인적 안전망’이 지속가능한 활동의 요소 중 하나로 꼽힌 것이다.
작년 여름에 처음 접한 다음세대재단의 ‘D.MZ 프로그램’은 청년세대 공익활동가들의 인적 안전망을 만드는 데에 아주 효과적이었다. 활동가들을 따뜻하게 초대하며 긴장을 풀어주고, 안전한 대화의 장을 촘촘하게 만들었다. 나는 작년 여름과 올해 가을, 총 두 번의 D.MZ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재단, 사회공헌, 사회복지, 시민사회, 사회적기업 등 정말 다양한 영역의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D.MZ를 통해 만난 활동가들은 저마다 조직 내에서 꺼내지 못했던, 공감할 수 있는 곳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안전한 D.MZ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은 쌓여온 고민과 어려움을 털어내고, 서로의 눈을 보며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D.MZ에는 매 회차 마지막에 ‘오늘의 D.MZ는 어땠는지 한마디로 표현’하는 시간이 있다. 참가자들은 ‘따뜻한 눈빛’ ‘위로’ ‘신세계’ ‘새로운 자극’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거울’ ‘토닥임’ ‘밥’ 등의 단어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D.MZ에서 만난 활동가들과 번아웃 경험을 나누고, 번아웃에서 벗어나기 위해 ‘리프레쉬’할 수 있는 다양한 취미생활을 소개하기도 했다. 수영, 달리기 등의 운동부터 사진 촬영, 문화생활, 덕질(?)까지 각자의 취미를 공유하며 공감대를 만들었다. 이후, 후속 모임을 통해 취미를 함께하기도 했다.
지난여름에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회원단체 내의 청년 활동가들을 모아 소규모 대화모임을 운영했다. 단체 외부 활동가를 만날 기회가 적은 청년 활동가들이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각자의 활동과 지속가능한 시민사회를 위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활동에 대한 애정이다. 각자 자기의 활동을 사랑하고, 조직을 사랑하고, 함께하는 동료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을 깊이 느낀다.
청년 활동가 네트워크는 흔히 ‘불평·불만의 장’이라고 오해받는다. 사실 활동가들의 불만은 애정을 기반으로 한 ‘성장에 대한 욕구’, ‘더 나은 활동 방식에 대한 욕구’인 경우가 많다. 더 잘하고 싶어서,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서 끊임없이 고민한다. 청년 활동가들이 정서적으로 지지받고,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 제시하는 끈끈한 네트워크가 필요한 이유다. 자기 활동에 자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활동가들을 더욱 단단하게 지키기 위해, 우리는 앞으로 더 연결되어야 한다. 앞으로 더 많은 청년 활동가가 안전하게 만날 기회들이 생겨나기를 바라며, 그 기회들에 꼭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다.
서민영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팀장
D.MZ(뎀지)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소셜섹터의 MZ 활동가들이 활동을 둘러싼 고민과 걱정으로부터 무장해제하고, 또래 활동가들과 일과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네트워킹 프로그램입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MZ 활동가들이 보내온 기고문을 ‘D.MZ 칼럼’으로 싣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