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1일(수)

“여성 직원을 뽑아라, 기업 이익이 늘어난다”

[인터뷰] 벤야 스티그 파거란드 사우스이스트노르웨이대 경영학 교수

노르웨이 20년 전 여성이사 할당제 도입
상장사 이사회 여성비율 8%서 45%로
“女임원 30% 이상 기업, 순익 6% 더 높아”

국내 500대 기업의 여성 이사 비율은 10%다. 지난해 자산 2조원 이상 상장법인은 여성 이사를 반드시 선임해야 한다는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소폭 오른 수치다. 다만 사내이사로 따지면 여성 비율은 2.3%에 불과하다. 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이 세계적으로 높은 국가인 노르웨이는 2002년 세계 첫 ‘여성 이사 할당법’을 제정했다. 상장 기업 이사회에 여성을 최소 40%로 채워야 하고, 기준 미달시 상장 폐지된다. 제정 당시 8.6%에 머물던 여성 이사 비율은 지난해 기준 45%로 늘었다.

벤야 스티그 파거란드 사우스이스턴노르웨이대 경영학 교수는 ‘여성 이사 할당법’ 도입을 이끈 주역이다. 그는 노르웨이 기업·산업 연맹(NHO)에서 성평등 관리자를 맡아 기업이 여성 이사 수를 안정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2010년부터는 ‘기업의 다양성 책임(CDR)’ 논의를 확산하기 위한 글로벌 플랫폼 ‘쉬코노미(SHEconomy)’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쉬코노미란 여성(She)과 경제(Economy)의 합성어로, 여성이 영향력을 미치는 경제 영역을 뜻한다. 쉬코노미는 경제 영역에서 여성의 중추적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파거란드 교수가 발표한 개념이다.

벤야 스티그 파거란드 교수는 "여성 리더십 증진을 통해 제품 개발 과정에 다양한 소비자 욕구를 반영할 수 있고, 이는 수익 증가로 이어진다"며 "아이폰을 만든 애플이 될 것인지, 노키아가 될 것인지는 다양성을 포용하는 기업의 노력에 달렸다"고 말했다. /유엔여성기구
벤야 스티그 파거란드 교수는 “여성 리더십을 통해 제품 개발 과정에 다양한 소비자 욕구를 반영할 수 있고, 이는 수익 증가로 이어진다”며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이 될 것인지, 노키아가 될 것인지는 다양성을 포용하는 기업의 노력에 달렸다”고 말했다. /유엔여성기구

지난 3일 방한한 파거란드 교수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다양한 성별을 포용하는 조직문화를 갖추지 못한 기업은 결국 뒤처질 것”이라며 “단순히 여성 직원, 고위직 비율에 집중하는 데서 나아가 여성 삶의 질이 올라갈 수 있는 업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21년 전 여성 이사 할당법 제정 당시 노르웨이 상황은.

“젠더 이슈로 남성과 여성이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남녀 갈등에 대한 사회적 피로도도 높았다. 여성 인권이 새롭게 주목받게 할 전략이 필요했다. 당시 IT 업계에서 일할 때인데 여성을 위한 목소리를 내려니까 주변에서 만류했다. 한쪽 목소리를 대변하면 커리어를 망치게 될 거라고 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었다. 기업과 여성에 관한 데이터를 모았고 ‘기업 내 성별 다양성을 높이는 건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제는 인식이 바뀌었다. 글로벌 기업 리더들은 젠더 다양성을 갖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지하고 있다. 내 커리어가 망가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웃음).”

-여성 직원을 늘리는 것이 비즈니스에 어떻게 도움이 되나.

“성별 다양성 확보는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기업 수익에 도움이 된다. 우선 성별이 다양한 기업은 더 혁신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다양한 소비자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효과는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따르면 성별, 인종 등 다양성을 갖춘 팀은 87%의 경우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렸다. 여성 임원 비율이 30% 이상 되면 그 이하인 기업보다 순수익이 6% 높다는 피터슨연구소의 연구 결과도 있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임원진 성별이 다양한 기업은 다른 기업 평균보다 21% 높은 수익률을 얻는다. 또 여성 소비자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체 구매의 85%에 여성의 의사가 개입된다. 전통적으로 남성 소비자 위주였던 금융, 자동차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쉬코노미는 니치시장이 아니다. 세계 시장 규모로 따지면 20조 달러(2경 6000조원)에 달한다. 중국과 인도 GDP를 합친 규모다. 이런 데이터는 단순 통계가 아니다. 혁신의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성별 다양성이 단지 형평성의 문제가 아니라, 우수한 사업 성과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증명한다. 데이터는 정확하다.”

-성별 다양성을 갖추기 위한 글로벌 기업 사례를 든다면.

“IBM은 경력단절여성 대상 ‘재진입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육아 등으로 커리어가 단절된 여성이 다시 필드로 돌아와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애플은 남녀 임금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임금 감사제도를 시행해 재무적 성과가 개선됐다. 구글은 쉬코노미와 파트너십을 맺고 여성 창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여성 비즈니스 리더를 더 많이 키워낸다는 취지다. 쉬코노미가 실리콘 밸리에서 매년 개최하는 콘퍼런스에도 글로벌 기업이 다수 참석한다. 남녀 모두 참여해 자유롭게 토론을 나눈다. 경쟁 기업끼리도 한 테이블에 앉아 모범 사례를 공유한다. 올해는 ‘AI에 내재된 편견과 극복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벤야 스티그 파거란드 교수는 "여성에게 조직 적응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여성기구
벤야 스티그 파거란드 교수는 “여성에게 조직 적응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여성기구

파거란드 교수는 지난 3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유엔여성기구가 개최한 ‘제1회 서울 성평등 담화’ 참석 차 방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제조·IT·금융 등 세계 경제를 이끄는 핵심 산업군이자 남성의 직종이라고 여겨졌던 분야에 여성이 참여하고, 리더십을 증진할 방안을 다뤘다. 삼성전자와 JP모건체이스, 인텔, 구글 등 글로벌 기업 출신 연사들이 조직 참여했다. 파거란드 교수는 “이번 행사처럼 비즈니스 리더들이 모여 개인적으로 겪었던 어려움과 편견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변화가 대기업 위주로 이뤄지는 것 같다. 여성 일자리는 중소기업에 더 많은데.

“그래서 아직 갈 길이 멀다. 남성과 여성,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가 여성 문제에 공감하고, 모범 사례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대기업의 경우에도 여전히 과제는 있다. 여성 직원 수 등 수치에만 집중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콘퍼런스에 가면 ‘우리 조직엔 여성 직원도, 관리자도 많다’고 자랑하는 기업 관계자가 많은데 더 중요한 건 ‘삶의 질’이다. 15년 전 뉴욕 블룸버그 본사에 갔을 때 한 남성 매니저의 자랑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여성 리더들이 얼마나 많은 자녀를 키우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스포츠를 함께 즐기는지 자랑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진전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여성 직원이 20시간씩 일을 하고, 워라밸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면 숫자는 의미 없다.”

-다양성을 담보하기 위해 기업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기업의 다양성 책임(CDR)을 2015년부터 강조해왔다. 기업 안에서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 문제도 CDR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 같은 여성이라도 사람마다 다른 장벽을 경험한다. 기업에서는 조직 내에 어떤 장벽이 있는지 발견하고, 여성 인재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여성을 바꿀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과거에는 여성이 남성의 일하는 방식을 답습하는 것이 정답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것은 다양성을 고려한 조치가 아니다. 모두를 포용하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우리 조직의 체제와 문화를 어떻게 바꿔나갈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남성 구성원은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여성 문제는 모두의 문제고,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지점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번 유엔여성기구 행사에서 개리 포드 JP모건 매니징 디렉터는 ‘성평등은 높은 성과를 내고 의욕적인 팀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면서 ‘남성들이 이 문제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인권 향상이 비즈니스에, 사회 전체에 베네핏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연구와 데이터가 증명하고 있다. 기업이 얼마나 다양성을 포용하는지가 앞으로 더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미래에 아이폰을 만든 애플이 될 것인지, 노키아가 될 것인지는 기업의 선택에 달렸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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