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문구 하나를 내보낼 때도 사내 여러 부서에서 2차, 3차로 교차 검토를 합니다. 특히 친환경 사업이나 관련 마케팅은 특정 부서 단독으로 진행하지 않아요. 에너지팀, 지속가능전략팀, CSR팀 등이 각각 검토하고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리스크를 관리합니다.”
국내 한 화학업계 관계자는 “그린워싱 논란 위험성에 대한 경계가 최근들어 더 강화되는 추세”라고 했다. 기업들이 점검 체계를 강화하는 이유는 세계적으로 기업을 상대로한 그린워싱 관련 소송이 늘면서다. 그린워싱 소송이란 친환경을 표방하는 위장환경주의 기업을 상대로 법원 혹은 소비자보호원 등과 같은 행정 기구에 제기된 소송을 뜻한다. 기업이 과학적 근거 없이 광고에 ‘탄소중립’이라고 명시하거나 지속가능성에 대해 소비자를 오인하게 할 경우 그린워싱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최근 국내 기업 내부에 ‘그린워싱 소송 주의보’가 내려졌다. 런던정경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기후소송 글로벌 트렌드 2023’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전 세계에서 기업을 대상으로 총 81건의 그린워싱 소송이 제기됐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9년 6건, 2020년 9건에 불과하던 소송 건수는 2021년 27건, 2022년 26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보고서는 기후변화 대응에서 기업의 책임과 역할을 향한 사회적 논의가 확대된 데 따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린워싱 소송 주체는 소비자부터 정부, 경쟁사 등 다양하다. 스위스 소비자단체 연합기구인 스위스소비자보호재단(SKS)은 7일 코카콜라와 렌터카 기업인 에이비스, 스위스 1위 통신사인 스위스콤, 난방유 유통사 쿠블러 하이촐 등 6개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사라 슈탈더 SKS 이사는 “스위스에서 휴대전화 서비스 가입이나 난방유 사용 등을 탄소중립과 연계하는 광고들이 나오는데, 대부분 주장이 과장되거나 근거가 없다”며 “6개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을 위해 벌인다는 프로젝트 역시 실제 온실가스 농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2021년 11월 이탈리아 섬유기업 알칸타라는 동종 업계 기업 미코를 대상으로 제품 광고 내 그린워싱 표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해 승소했다. 미코는 광고에 ‘지속가능성을 갖춘 최초의 극세사’ ‘100% 재활용 가능’ ‘에너지 사용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80% 감축’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이탈리아 고리치아 법원은 미코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 사용을 중단하고, 판결 내용을 웹사이트에 게재·배포해 소비자들에게 알릴 것을 명령했다. 프란체스카 클로키아 판사는 “기업의 친환경 제품·서비스 홍보는 기후위기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자의 구매 결정력을 좌우할 수 있다”며 “과학적 근거 없는 허위 주장은 불공정한 경쟁을 초래한다”고 진술했다. 이 소송은 유럽 최초의 그린워싱 판결로 기록되기도 했다.
도이치뱅크의 펀드운용 자회사 DWS그룹은 그린워싱 혐의로 2년째 몸살을 앓고 있다. DWS가 판매한 친환경 펀드가 투자의 지속가능성을 과장했다는 내부고발자가 나오면서다. 이에 작년 5월 독일 검찰은 ‘투자 사기’ 혐의로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도이치뱅크와 DWS 사무실을 급습했다. 이 과정에서 아쇼카 윌더만 전 DWS 대표가 사임했고, 주가는 24% 폭락했다. 지난해 9월에는 독일 소비자 단체가 프랑크푸르트 법원에 DWS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단체는 “DWS는 기업 마케팅 자료에서 자사의 친환경 펀드는 화석연료 부문에 대한 투자를 일절 하지 않는다고 홍보했지만, 이 펀드를 보유한 투자자들은 석탄·가스산업에서 최대 15% 수익을 내는 회사에 투자를 할 수 있다고도 언급해 투자자의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린워싱 소송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정확한 데이터 공개다. 송경훈 지평 변호사는 “이를테면 플라스틱 사용량을 20% 절감한 A생수병이 아니라 플라스틱 사용량을 기존 10㎏에서 2㎏ 절감한 A생수병처럼 구체적으로 수치를 명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린워싱 분쟁이 늘면서 각국 규제 당국은 관련 지침 마련에 나서고 있다. 호주경쟁소비자위원회(ACCC)는 17일 기업의 그린워싱을 막는 지속가능성 지침 초안을 발표했다. 초안에는 ▲과학적 근거나 환경적 이익의 과장 불가 등 정확하고 진실한 주장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3자 인증 활용 ▲연관성 없는 시각적 요소 사용 금지 등의 원칙이 담겼다. 지난 3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2012년 마지막으로 개정된 친환경 마케팅 지침 ‘그린 가이드(Grren Guides)’를 새롭게 개정할 계획이라 밝혔다. 그린워싱 관련 소송에서 자주 등장한 ‘탄소상쇄’ ‘재활용’ ‘유기농’ 등 친환경 용어를 재정의하기 위해서다.
국내 그린워싱 규제 기관은 환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6월 그린워싱을 방지하기 위해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지침’을 개정했다. 환경 관련 부당한 표시·광고를 판단하는 세부 심사기준을 구체화해 그린워싱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목표다. 환경부는 올해 1월 환경성 표시·광고 규정 위반 시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이하 ‘환경기술산업법’)을 개정할 계획이라 밝힌 바 있다. 아무런 근거 없이 제품에 ‘친환경’ ‘무독성’ 같은 포괄적이고 절대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말라는 취지다. 현행 환경기술산업법에는 환경성 표시·광고 규정을 위반한 경우 벌금과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차원의 과징금만 포함됐다.
송경훈 변호사는 “기존에는 그린워싱에 대한 명확한 심사기준과 처벌규정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행정지도만 하고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며 “환경기술산업법에 따른 과징금은 매출액이랑 연동되는 구조다보니 자금 규모 파악이 힘든 영세기업한테 적용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글로벌 흐름을 따라 환경부와 공정위가 심사기준·규제를 강화하면서 그린워싱 관련 소송·분쟁이 더 구체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는 “최근 몇 년새 국내에서 그린워싱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앞으로 관련 문제제기는 더욱 많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정부가 그린워싱 방지 지침을 보완하고 있기 때문에 처분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두루뭉술한 친환경 문구로 고객을 끌어들이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강조했다.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