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기업 사회공헌 파트너로 재부상하다

[2022 매출 50대 기업 사회공헌 분석]

예산 전년보다 1000억원 증가
NGO 협업 사업 전체 64% 차지
환경 사업 비율, 5년새 9%→19%

사회공헌도 ESG와 연계
“임팩트 측정·공시 강화할 것”

매년 6월은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발간되는 시즌이다. 업계에서는 CSR 부서를 ESG팀으로 통폐합하는 기업이 늘면서 사회공헌 위축을 우려했다.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2021년도 사회공헌 활동은 실제로 축소됐다.

최근 분위기가 반전됐다. 더나은미래가 매출 상위 50대 기업의 2022년도 사회공헌 현황을 조사한 결과 코로나로 인한 경기 침체에도 지난해 사회공헌 예산이 전년 대비 1000억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 대상 기업의 사회공헌 예산은 2020년 1조2641억원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한 2021년 1조2064억원으로 소폭 감소했다가 2022년 1조3182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코로나 발생 전에 편성된 2020년 예산과 비교해도 541억원 더 많다. 기업들은 내년도 예산 증액을 검토할 정도로 사회공헌 판이 커지고 있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진행됐으며, 50대 기업의 대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각 사별로 3개씩, 총 150개 취합해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ESG에 묻힌 CSR?… 예산은 늘었다

이번 조사에서 기업별 사회공헌 예산을 살펴보면 LG전자가 가장 공격적으로 예산을 증액했다. 지난 2020년 260억원 수준의 연간 예산을 2021년 410억원, 지난해 750억원으로 2년 만에 3배 가까이 키웠다. 포스코홀딩스도 2020년 340억원, 2021년 495억원, 2022년 543억원으로 매년 지출을 늘렸다. SK텔레콤은 같은 기간 513억원에서 745억원으로 2년 새 예산을 1.4배가량으로 증액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사회공헌 규모 확대의 원인으로 ‘비즈니스 모델과 연계된 사회공헌 사업’을 지목했다. 최근 몇 년 새 업(業) 특성을 살린 사업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으면서 사회공헌 규모도 덩달아 커졌다는 분석이다. 청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SW)·코딩 무상 교육을 지원하는 삼성전자의 ‘삼성청년SW아카데미’(SSAFY), 청각장애인 기사가 택시를 운전하는 현대차의 ‘고요한택시’, 독거노인·장애인 가구에 인공지능(AI) 스피커를 설치하고 소통하는 SK텔레콤의 ‘AI돌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혜진 SKT ESG얼라이언스 팀장은 “기업의 업 특성을 반영한 사회공헌 사업을 펼치면 더 전문적이고 장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며 “고객과 투자자 입장에서도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과 연계된 사회공헌 사업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했다.

업과 연계된 사회공헌일수록 장기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은 “기업의 경영 실적이 악화할 때 사회공헌 사업도 위기를 맞게 되는데, 비즈니스와 연결돼 있으면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며 “ESG 차원에서도 장기적인 사회공헌일수록 좋은 평가를 받는 데 유리하다”고 말했다.

기아는 2012년부터 개발도상국의 지역사회 자립과 환경 개선을 지원하는 '그린라이트 프로젝트(GLP)'를 NGO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기아는 2012년부터 개발도상국의 지역사회 자립과 환경 개선을 지원하는 ‘그린라이트 프로젝트(GLP)’를 NGO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전문성 있는 NGO와 협력한다”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의 고민 중 하나는 역량 있는 파트너를 찾는 일이다. 과거 기업 단독으로 추진했던 사업을 줄이고, 전문성을 갖춘 NGO를 찾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더나은미래가 매출 50대 기업의 대표 사회공헌 사업 150개를 분석한 결과, 비영리단체를 파트너 기관으로 삼고 진행한 사업 비율이 64%(이하 중복 응답)로 압도적이었다. 이어 기업 단독으로 추진한 사업 22.67%, 정부·지자체 20.67%, 자사 출연 재단 2.6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전경련이 발표한 ‘2016 사회공헌 백서’ 결과와 비교하면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기업 사회공헌 사업 파트너로 NGO를 선택한 비율은 31.7% 수준이었다. 어정욱 굿네이버스 나눔마케팅본부 사회공헌부장은 “최근 기업들이 먼저 비영리단체의 특화 분야나 사업 비전을 알아보고 협업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라고 했다. 백진 월드비전 기업파트너십팀장은 “현재 기업들과 100여 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라며 “사업 기획 단계부터 기업 관계자들과 논의해 구체적인 방향을 잡아나간다”고 말했다.

NGO, 기업 사회공헌 파트너로 재부상하다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은 NGO는 규모나 영역 측면에서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2018년 더나은미래가 국내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 사회공헌 프로그램 분석’에서는 흔히 ‘메가 NGO’로 불리는 월드비전·굿네이버스·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에 파트너십이 쏠려 있는 모양새였다.

최근에는 판세가 바뀌었다. 기업들은 단체 규모에 매몰되지 않고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더 중시한다. 이원기 현대제철 지속가능경영팀 책임은 “기업의 CSR을 더 효과적으로 진행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NGO의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기관의 규모보다는 사업 수행 역량, 실질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수행 인력, 네트워크, 진정성을 본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은 현재 당진복지재단, 한국주거복지사회적협동조합 등과 사회공헌 사업을 운영 중이다.

LG화학은 환경·과학·사회교육 분야 리더를 양성하기 위한 온라인 멘토링 프로그램 ‘라이크그린(Like Green)’을 기아대책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이영준 LG화학 CSR팀 책임은 “교육관련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해도 사실상 화학사는 학교·교육센터 등과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에 단독으로 진행하기는 어렵다”며 “전국 교육기관과의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던 기아대책이 중간다리 역할을 해줬고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LG화학이 개발한 그린클래스 교육자료를 활용해 수업을 듣는 학생들. LG화학은 사회공헌 사업 '라이크그린(Like Green)'의 일환으로 아동이 기후위기 문제를 쉽게 이해하도록 교육자료를 개발해 학교와 돌봄기관에 제공한다. /LG화학
LG화학이 개발한 그린클래스 교육자료를 활용해 수업을 듣는 학생들. LG화학은 사회공헌 사업 ‘라이크그린(Like Green)’의 일환으로 아동이 기후위기 문제를 쉽게 이해하도록 교육자료를 개발해 학교와 돌봄기관에 제공한다. /LG화학

유재욱 건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기업들이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을 가속화하면서 사회공헌 사업도 이런 흐름에 영향을 받아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포용하는 식으로 가고 있다”면서 “자사 출연 재단에 기부를 하거나 단독으로 사회공헌 사업을 추진하는 것보다 외부 기관과 협력하는 게 성과도 좋다”고 말했다.

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는 “사회공헌의 핵심인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도 기업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에 강점이 있는 비영리단체와 협업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환경 관련 사회공헌 사업, 5년 새 대폭 늘어

‘환경’을 주제로 한 사회공헌 사업이 대폭 늘어난 것도 특징이다. 국내 50대 기업의 대표 사회공헌 사업 150개를 지원 대상별로 분류한 결과, 취약계층 지원이 전체의 32.67%로 가장 많았고 환경보전 사업이 19.33%로 뒤를 이었다. 2018년 더나은미래의 100대 기업 사회공헌 분석에서는 환경 관련 사업의 비율이 9.1%에 불과했다.

현대차는 네덜란드의 환경 NGO '헬시 시즈(Healthy Seas)'와 유럽 7국에서 해양 정화 작업을 벌인다. /현대차
현대차는 네덜란드의 환경 NGO ‘헬시 시즈(Healthy Seas)’와 유럽 7국에서 해양 정화 작업을 벌인다. /현대차

이번에 조사한 기업들의 환경 사회공헌 사업은 ‘탄소중립’과 ‘생물다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현대차는 네덜란드의 환경 NGO ‘헬시 시즈(Healthy Seas)’와 독일·프랑스·노르웨이 등 유럽 7국에서 해양 정화 작업을 벌인다. 자원봉사 다이버들은 바닷속에 버려진 어망을 수거하고, 그물에 걸린 해양생물도 구조한다. 수거된 어망은 재생 나일론 원사로 재활용돼 자동차 생산 소재로도 쓰인다. 기아는 지난해부터 해양수산부와 공동으로 탄소흡수원인 갯벌을 복원하고 생물다양성 관련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LG화학은 올해 하반기부터 사업장이 있는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탄소를 흡수하는 해초인 잘피 서식지 복원에 나선다. 오는 2026년까지 축구장 14개 규모인 10ha(헥타르)의 잘피 군락지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임팩트 측정과 공시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환경 관련 사회공헌 사업이 증가한 요인으로 꼽힌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은 사업 성과를 정량 평가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성과를 측정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원기 현대제철 책임은 “과거의 CSR은 기업 문화적 측면에서 임직원 참여에 중점을 뒀지만, 최근 CSR 트렌드는 크게 변하는 추세”라며 “요즘은 사회공헌 사업을 ESG와 연계해서 전개하는지, 어떤 사회·경제적 임팩트를 창출했는지 정성적·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예전에는 일회성 해양 플로깅을 했다면 이제는 탄소중립 효과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장기적인 프로젝트 사업 형태로 전환하고 있다”며 “앞으로 기업들은 정량적인 임팩트 공시를 더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나은미래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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