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이동하기 어렵다고요? 김포공항에서는 ‘시니어 매니저’를 찾으세요”

사회적기업 리베라빗, 공항 내 이동 지원
日평균 468명 이용… 시니어 일자리 창출

“짐도 많은데 공항까지 타고 가세요.”

지하철 5호선 김포공항역에 내린 한 가족에게 유신일(67)씨가 말을 걸었다. 유씨 옆에는 6명이 탈 수 있는 흰색 카트가 서있었다. 유씨는 지하철역에서 공항까지 승객을 태우고 전동카트를 운전하는 일을 5년째 하고 있다. 짐 가방을 트렁크에 넣고 ‘신기한 자동차’에 올라타는 어린이 얼굴에 설렘이 묻어났다. “안전 체인 꼭 잠가 주세요.” 유씨는 출발 전 안전수칙을 일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손자뻘 어린이 이용객을 대하는 그에게서 노련함이 보였다.

지난달 5일 서울 김포국제공항 내에서 어린이 승객과 가족이 '포티케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서보민 청년기자
지난달 5일 서울 김포국제공항 내에서 어린이 승객과 가족이 ‘포티케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서보민 청년기자

사회적기업 리베라빗은 한국공항공사, 함께일하는재단과 2018년 1월부터 ‘포티케어(Porty Care)’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장애인·영유아·고령자 등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유씨와 같은 시니어 매니저가 지하철역부터 공항까지 전동 카트로 데려다 주는 서비스다. 평균 나이 65세. 시니어 매니저의 하루를 지난달 5일 동행 취재했다.

오전 10시. 비 오는 아침부터 김포공항은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 지팡이를 짚은 노인, 임산부, 휠체어를 탄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손에는 우산과 짐이 한가득이었다. 공항 곳곳에서는 유씨 같은 시니어 매니저가 운전하는 흰색 카트를 찾아볼 수 있었다.

지하철 김포공항역은 환승 동선이 길고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김포공항역은 5호선과 9호선, 공항철도, 김포골드라인, 그리고 곧 개통할 서해선까지 총 5개 지하철 노선이 모인다.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조사 결과 김포공항역은 수도권 107개 철도 환승역 가운데 2번째로 환승 환경이 나빠 ‘최악의 환승역’으로 꼽히기도 했다. 방문객들은 거대하고도 복잡한 교통섬 속에서 길을 잃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자동차를 타고 공항에 방문해도 국내선과 국제선 청사는 10분 이상을 걸어야 오갈 수 있다. 유씨는 “고령자나 장애인은 공항에서부터 여행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포티케어 서비스는 인기가 좋다.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468명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누적 이용객 수는 67만명에 달한다. 주말에는 서비스 이용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 줄을 서야 할 정도다. 포티케어 이용자 노연진(84)씨는 “80이 넘은 고령자가 걸어서 이동하기에는 지하철부터 공항까지 거리가 너무 멀다”며 “전동카트를 타면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어서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채수범(65) 시니어 매니저와 청년기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박근영 청년기자
채수범(65) 시니어 매니저와 청년기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근영 청년기자

포티케어 서비스는 평균 연령 65세인 시니어 인력으로만 운영된다. 매니저들은 하루에 4시간 또는 8시간 중 하나를 선택해 근무할 수 있다. 현재 고용된 시니어 매니저 22명 중 13명이 5년 이상 장기근속 중이다. 포티케어 서비스 시범운영 당시에는 청년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했다. 그러다 한국공항공사와 함께일하는재단이 2018년 정식 서비스로 전환하면서 ‘포티케어 주 이용객이 고령자인 만큼, 서비스 운영 인력의 절반 이상을 시니어 인력으로 채용해 보자’고 리베라빗에 제안했다. 원영오 리베라빗 대표가 온라인에 채용 공고를 내자, 경쟁률이 120대 1에 달할 정도로 호응이 뜨거웠다. 원 대표는 “공항에서 서비스를 이용해 본 분들이 ‘나도 이런 의미 있는 일에 도전하고 싶다’며 이력서를 주고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컴퓨터가 서툰 분들은 정성스럽게 직접 쓴 종이 이력서를 들고 오기도 하세요. 그런 이력서는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가, 결원이 생길 때 연락을 드려요.”

방글라데시에서 사업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채수범(65)씨는 “은퇴 후 시니어 매니저로 활동하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았다”고 말했다. 채씨는 올해로 5년째 매니저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매니저를 하면서 들은 감사인사가 평생 사회생활을 하며 들은 것보다 많다”며 “이동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느끼게 해줬다”고 말했다.

원 대표는 포티케어 서비스를 공항 밖의 다양한 공간으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지금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시설과 서비스를 확충하는 건, 결국 모두를 위한 투자이기도 해요. 누구나 언젠가는 나이가 들잖아요. 사람들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이동권 문제를 바라봐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주희·박근영·서보민 청년기자(청세담1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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