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 장학에 대한 편견을 깨다

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 장학에 대한 편견을 깨다

[Cover Story] 진화하는 장학사업

장학사업은 비영리 업계의 전통적 자선 프로그램이다. 국내 최초의 공익 재단도 장학사업으로 시작했다. 1939년 설립된 ‘양영회(養英會)’는 일제강점기에 지방에서 서울로, 바다 건너 일본으로 유학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해방 이후 기업 주도로 생긴 여러 공익 재단들도 대부분 인재 육성이라는 목표로 학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수십 년간 이어져온 장학사업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폭넓게 이뤄져 온 장학 대상자를 분야별 우수 학생으로 특정하고, 해외에서 한국으로 공부하러 오는 유학생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개인에 대한 지원이 아닌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스타트업 지원’까지 장학사업의 범주에 포함하시키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은 2007년 재단 설립 이후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장학사업을 벌였다. 지난 2021년에는 기존 장학사업을 ‘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scholarship)’이라는 이름으로 개편하고 장학의 편견을 깨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글로벌 ▲미래산업 ▲국제협력 ▲사회혁신 ▲문화예술 ▲사회통합 등 장학을 여섯 분야로 나누고 아세안 8국 유학생, 이공계 석·박사, 클래식 전공자, 청년 창업가 등으로 스칼러십 펠로우로 늘려가는 중이다. 향후 5년간 미래 인재 1100명을 육성한다는 게 재단의 목표다.

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 장학에 대한 편견을 깨다

하나, 사회혁신가를 키워라

올해 17년 차를 맞은 현대차정몽구재단의 기금은 총 8500억원. 정몽구 명예회장 사재로 출연했다. 2007년 11월 600억원을 시작으로 2008년 300억원, 2009년 600억원을 출연했다. 본격적인 장학사업이 시작된 2011년에는 개인 사재 출연금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5000억원을 기탁했다. 2013년에는 1000억원씩 두 차례에 걸쳐 사재를 증여했다. 재단 운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학생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대출을 받아 힘들어하는 사연들이 가슴 아프다”라며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도전하길 바란다”고 했다.

설립자의 이름을 달고 새롭게 출발한 ‘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의 핵심 키워드도 ‘도전’이다. 이번에 개편된 여섯 분야의 카테고리 속에서 재단 설립자가 평소 강조한 도전 정신과 기업가 정신이 녹아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사회혁신’이다. 사회문제 설루션을 가진 청년 창업가를 발굴·육성하는 재단의 기존 사업인 ‘H-온드림 스타트업 그라운드’가 사회혁신 부문 스칼러십으로 편입됐다. 장학사업을 단순 학자금 지원이라는 테두리에 가두지 않고, 비즈니스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미래 인재 육성까지 의미를 확장한다는 취지다.

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에 선발된 펠로우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임윤찬(문화예술/피아노), 구지원(미래인재/소프트웨어학), 권여진(국제협력/UNFPA 네팔), 장지호(사회통합/정치학), 이온(사회혁신/트레드앤그루브 대표), 인타락 카녹폰(글로벌/정책학). /현대차정몽구재단
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에 선발된 펠로우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임윤찬(문화예술/피아노), 구지원(미래인재/소프트웨어학), 권여진(국제협력/UNFPA 네팔), 장지호(사회통합/정치학), 이온(사회혁신/트레드앤그루브 대표), 인타락 카녹폰(글로벌/정책학). /현대차정몽구재단

H-온드림은 2012년부터 재단에서 사회혁신 조직을 키우기 위해 진행해온 스타트업 지원 사업이다. 지금까지 스타트업 294곳을 육성했고, 이를 통해 5195개 일자리를 창출했다. 스칼러십에 편입된 2021년부터 ▲예비 창업~법인 3년 차 스타트업의 시장 검증을 지원하는 ‘H-온드림 A(Adaptive Incubating)’ 트랙 ▲연매출 1억원 이상 스타트업의 성장 가속화를 지원하는 ‘H-온드림 B(Business Accelerating)’ 트랙 ▲현대차그룹과 협력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H-온드림 C(Collective Environment Action)’ 트랙 등 크게 세 부문으로 모집 단위를 세분화했다.

지원 규모는 파격적이다. 사업 지원금으로 A트랙에 팀당 2000만원, B트랙 4000만원, C트랙 5000만원을 지급한다. 선발팀은 6개월간 성과 경쟁을 거치고, 우수팀으로 선발되면 추가 지원금을 받는다. 지난 11월 마무리된 H-온드림 10기에서는 지능형 수륙양용 로봇을 활용해 수질 모니터링 설루션을 제공하는 ‘아트와’(C트랙 우수팀)에 1억5000만원, 폐배터리를 재활용해 기능성 리사이클 소재를 개발하는 ‘라잇루트’(B 트랙 우수팀)에 6000만원을 추가로 지급했다.

사회혁신 조직을 장학사업의 일환으로 지원하는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마스터카드재단은 2012년 당시 5억달러(약 6500억원) 규모로 ‘마스터카드재단 스칼러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아프리카의 사회문제 해결을 주도할 인재를 육성하고, 대학 졸업 후에 일할 수 있는 사회혁신 조직도 함께 키우기 위해 기획된 사업이다.

특히 마스터카드재단은 청년 기업가를 양성하는 조직인 ‘리솔루션프로젝트(The Resolution Project)’와 함께 ‘리솔루션 소셜벤처 대회(Resolution Social Venture Challenge)’를 매년 열고 장학생들이 창업생태계에 뛰어들 수 있도록 지원한다. 재단에 따르면, 지금까지 장학생이 창업한 소셜벤처는 19국 76곳에 달하고 대회에서 수상한 장학생은 215명이다.

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 장학에 대한 편견을 깨다
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 장학에 대한 편견을 깨다

둘, 글로벌로 진출하라

정몽구스칼러십의 특징 중 하나는 재단에서 직접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국제협력 분야의 장학사업인 ‘온드림 글로벌 아카데미’(OGA)는 국제기구나 국제NGO 진출을 희망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과 해외 진출 장학금을 제공한다. 기존 대학에서 채울 수 없는 부분을 재단에서 별도의 교육과정으로 열고, 수료 이후 3년 안에 해외 국제기구로 진출하면 최대 900만원을 지원한다.

OGA 장학생은 지난 6년간 170명이다. 이 가운데 70명(41%)이 유엔개발계획(UNDP),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 또는 국제 NGO에 진출했다. OGA 6기 출신인 김태호(31)씨는 지난해 11월 세계은행그룹 한국사무소(World Bank Group Korea)에 취업했다. 그는 “국제기구 취업 문턱이 높기도 하지만 어렵게 들어가도 무급 인턴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라며 “정부나 대학 차원에서 지원 제도가 있긴 하지만 국제기구에 합격해야 지원해주는 구조라 사실상 취업 준비생 대상의 장학 제도는 OGA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문화예술 분야 장학생을 위해서는 무대에 서는 기회를 제공한다. 재단은 지난 2014년부터 매년 ‘온드림 콘서트’를 열고, 이듬해부터는 재단과 한국종합예술대학교가 공동으로 강원 평창 방림면에서 ‘계촌 클래식 축제’를 진행한다. 지난해 8월 축제에서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를 펼쳤다. 임윤찬은 2020년 문화예술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무료 공연이었지만 작은 시골 마을에 70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재단 장학생으로 지난해 11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한 첼리스트 한재민(17)군은 “보통 다른 재단은 경제적 지원만 해주고 끝나는데, 정몽구재단은 ‘온드림 앙상블’이라는 단체를 운영해서 교수님들께 레슨을 받고, 큰 공연장에 설 기회도 준다”라며 “학생들끼리 앙상블을 하고 연주를 하면서 서로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잘돼 있어서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셋, 교류하고 협력하라

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에 선발된 이들은 장학생이 아닌 ‘펠로우’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펠로우라는 말에는 ‘네트워킹’의 의미가 담겼다는 게 재단 측 설명이다. “한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소중하게 여긴다”는 정몽구 명예회장의 평소 지론이 담긴 지점이기도 하다. 펠로우들의 반응은 좋다. 장학금을 지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펠로우들이 지속적으로 교류하도록 유도한다. 장학 지원이 종료된 펠로우들도 재단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이유다.

우수 펠로우에게는 기본적인 학자금 지원과 별도로 추가 지원도 이뤄진다. 재단은 해외 100위권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한 장학생 대상으로 장학금을 최장 5년간 지원한다. SCI급 국제 학술지에 논문 게재, 국제 콩쿠르 입상 등 국제 활동 성과에 따라 추가 장학금을 제공한다.

미래인재 분야 펠로우인 구동훈(28)씨는 석·박사 통합과정 중이다. 재단에서는 석사과정은 최대 2년, 박사과정은 4년, 석·박사 통합과정은 5년까지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고 학습 지원비로 매 학기 180만원을 준다. 그는 “일반적으로 장학사업은 학자금을 받고 보고서를 내면 끝나는 경우가 많고, 큰 재단에서도 일년 한 번 정도 모임 행사를 여는 걸로 그친다”라며 “전공 분야가 융합 연구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아무래도 중요한데, 정몽구재단에서는 분야별 장학생들이 만나서 토론하고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강연을 수시로 열고 문화 공연도 초대받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재단은 장학생 간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별도의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2박 3일간 열리는 ‘스칼러십 여름캠프’에는 한국인과 외국인 장학생 약 200명이 참여한다. 펠로우끼리 동아리를 조직하면 활동비를 지원하는 ‘온드림 클럽’도 인기다. 현재 장학생과 선배 장학생 간 네트워킹 행사인 ‘홈커밍데이’에서는 정보 교류가 활발히 이뤄진다.

글로벌 스칼러십 장학생인 라다란 제닌 앤(Laddaran Janine Anne)은 펠로우로 소속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재단의 펠로우라는 자격으로 다양한 분야의 장학생들과 동아리를 조직해서 활동할 수 있고, 꾸준히 강연이나 모임 행사에 참석해서 얼굴을 보게 한다”라며 “지난 학기에는 펠로우 8명이 여행 동아리를 만들어서 재단 지원으로 여행도 하고 맛집도 찾아다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재단은 펠로우들의 다양성을 넓히기 위해 지난해부터 탈북, 다문화, 자립 준비 청년의 석·박사 과정을 지원하는 사회통합 분야를 신설했다. 충분한 잠재력을 지녔지만 환경 탓에 꿈을 펼치지 못하는 학생들을 발굴해 지원하기 위해서다. 권오규 현대차정몽구재단 이사장은 “저출산·고령화, 기후변화, 양극화 등 미래 사회가 마주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재단은 사회문제 해결의 역량을 갖춘 미래 세대와 함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일요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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