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8일(일)

[Cover Story] 하루 14시간의 살인적인 근무… 그리고 1130명의 죽음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 참사 현장 르포
아름다운가게·더나은미래 공동기획시리즈 ① 당신의 옷은 떳떳합니까

지난 24일, 방글라데시 다카 대학 병원 입구에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환자들은 복도 바닥에 누워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샤바르 지역 희생자’라고 쓰인 종이가 붙은 병실 문을 열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30개의 침대 주변으로 환자, 보호자, 의료진들이 뒤엉켜 있었다. 한 달 전 무너져내려 1130명의 목숨을 앗아간 8층짜리 의류 공장, ‘라나플라자’에서 살아남은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이다.

지난달 24일 무너져내린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 ‘라나플라자’ 참사 현장. 콘크리트 잔해와 철골이 뒤엉킨 모습이 당시 사건 피해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지난달 24일 무너져내린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 ‘라나플라자’ 참사 현장. 콘크리트 잔해와 철골이 뒤엉킨 모습이 당시 사건 피해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스스로 팔을 잘라야 했어요.”

베검(여·25)씨가 왼쪽 팔에 동여맨 하얀 붕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라나플라자 뉴웨이브 공장에서 재봉사로 일하고 있었다. 건물이 무너지던 날, 베검씨는 공장 매니저와 심하게 다퉜다.

“건물 외벽에 심하게 금이 간 것을 보고, 무서워서 도저히 일할 수가 없었어요. 오늘 일을 쉬고 싶다고 했더니, ‘그럼 자르겠다’고 윽박지르더군요.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3층에서 일하고 있는 여동생에게 뛰어갔어요. 동생과 함께 짐을 싸고 있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갔고, 그 이후론 기억이 나질 않아요.”

눈을 떴을 땐 사방이 컴컴했다. 건물 기둥 사이에 끼여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루 뒤, 응급 구조대가 그녀를 발견했다. 하지만 엉킨 건물 더미 사이에서 그녀의 팔을 짓누르고 있는 기둥을 찾을 수 없어 속수무책이었다. 포기하려는 구조대에게 베검씨는 애원했다. “구조대원이 ‘혹시 칼을 주면 스스로 팔을 자르고 나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어요. 나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틀이 더 지나서야 베검씨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잘려진 그녀의 팔은 이미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베검씨가 일했던 뉴웨이브공장은 글로벌 의류 브랜드인 베네통·망고·프리마크 등에 납품하는 곳이다. 베검씨는 매일 14시간씩 바지, 벨트를 만들었지만 “어떤 브랜드의 옷인지 몰랐다”고 했다. 옷 만드는 경력만 4년인 그녀지만, 불가능한 물량을 납기일에 맞추라는 압박 때문에 자주 아팠다고 했다. 베검씨는 “아직 실종 상태인 여동생이 걱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딸의 시체라도 찾고 싶다”는 실종자 가족들

건물이 무너진 후 노동자들을 구조하는 모습. /보이스(VOICE) 제공
건물이 무너진 후 노동자들을 구조하는 모습. /보이스(VOICE) 제공

사고 현장은 처참했다. 9층 공장이 있던 자리에는 무너진 건물 잔해들만 남아있었다.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미처 완성되지 못한 옷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붕괴 당시 영향을 받은 옆 건물들도 흉하게 휘어진 철골을 드러낸 채 서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우리들의 딸을 찾아달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들이 현장 주변에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실종자를 찾는 가족들은 건물 주위에 쳐놓은 철조망을 붙잡고 흐느끼고 있었다. 티칠리아(여·50)씨는 “딸의 시체라도 찾고 싶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녀는 “사건 발생 후 20일 만에 수색 작업을 중단한 정부가 원망스럽다”면서 “보상금도 병원에서 만난 피해자들에게만 현금으로 나눠줘서, 그때 받지 못한 이들은 피해를 보상받을 길도 없다”고 했다.

◇ “도움 필요한 이 넘쳐나는데, 책임지는 이 없다”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방글라데시 국립대 트라우마 치료센터에서 만난 유온(남·35)씨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팔·다리가 전부 부러진 데다 이식 수술을 받은 왼쪽 다리조차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는 “10년간 의류 공장에서 바느질을 하면서 쌓은 경력이 물거품이 될까 봐 걱정이다”고 했다. 두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유온씨는 매일 남들보다 5시간을 더 일했다. 기본 월급 5000다카(약 63000원)에 초과 수당 3000다카(약 3만8000원)를 더 받아도 생활비가 부족해, 그의 아내도 의류 공장에 나가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남편을 돌보느라 일을 그만둔 상태다. 방글라데시의 노동·인권 비영리단체 보이스(VOICE) 총괄 디렉터인 암메드 무함마드(남·47)씨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넘쳐나는데, 책임을 지는 이는 없다”면서 “방글라데시의 노동 환경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라나플라자와 같은 사고는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다카=주선영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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