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1일(금)

[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 4년간 풀린 128억 기부금 ‘새희망씨앗’ 사각지대 막을 기회 5번 있었다

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 분석 …<기부문화 활성화②>

기부단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128억원 기부금 횡령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부 사기 집단 ‘새희망씨앗’ 때문. 사건이 보도된 이후, 신규 기부자가 절반으로 줄었다는 비영리단체도 있다. 국내 기부 문화는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됐는데, 제도와 시스템은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4년간 4만9000여명으로부터 128억원을 모금한 ‘새희망씨앗’. 만약 새희망씨앗의 사기 행각을 막을 기회가 5번 있었다면? 더나은미래는 새희망씨앗 사건을 중심으로 국내 기부문화 사각지대를 집중 조명해봤다. 지난달(8월 29일 더나은미래 지면) 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 심층 분석 ‘시민사회와 공익 단체’ 이슈에 이어 2편은 기부 문화 활성화 과제다.

#1단계 :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인가’의 요지경

비영리 사단법인 새희망씨앗이 설립된 시기는 2014년 10월 17일. 당시 주무 관청은 서울시다. 비영리 사단법인은 학술, 종교, 자선, 사교 등 영리 아닌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할 수 있다. 2인 이상의 설립발기인을 모집하고, 비영리 사단법인의 정관을 작성하고, 창립총회 절차를 거친 후 주무 관청의 설립 허가를 받아야한다. 사실 사단법인 새희망씨앗이 설립되기 두 달 전인 2014년 8월 6일. ‘새희망씨앗’이라는 동일한 이름의 주식회사가 설립됐다. 인터넷신문 발행 및 판매업, 교육사업, 인쇄·출판업 등을 목적으로 자본금 1억500만원으로 회사가 만들어졌다. 주식회사 새희망씨앗의 사내이사진 3명은 비영리 사단법인 이사로도 등재돼 있다. “사단법인 설립 과정에서 현재 만들어진 검증 절차는 실효성이 전무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새희망씨앗’으로 법인상호검색을 하면 동일한 이름의 주식회사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법원 인터넷등기소 캡쳐

주무 관청마다 사단법인 인가 기준도 제각각이다. 의료복지 관련 비영리단체 A관계자는 “단체 산하 독립연구소 전문구성원들이 의사라 보건복지부로 사단법인 인가신청을 했지만 반려되고 이후 외교부에서 허가받았다”면서 “담당 부처 공무원이나 부처별로 기준이 다르다”고 말했다. B단체는 행정안전부를 주무 관청으로 신청했는데, 담당자로부터 “법인 기본재산이 5000만원 이상이 아니면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B단체 관계자 K씨는 “어느 법이나 규정에도 기본재산 5000만원에 대한 규정은 없고, 우리 법인은 회원들의 수입에 의존하는 곳이라고 불합리하다고 이야기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B단체는 결국 행안부가 아닌 서울시로부터 설립 허가를 받았다. 현장에서는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은 주무 관청 공무원을 잘 알면 바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통용된다. 미르재단은 단 하루 만에 설립 등기가 완료됐다. ☞허가제 vs 인가제 어떤 것이 좋을까? 

대안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설립은 쉽고 사후관리가 철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에서는 2008년 공익법인 제도를 개혁하면서 주식회사 설립과 비슷하게 법률이 정하는 요건만 갖추면 비영리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준칙주의’를 도입했다. 대신 단체의 공공성은 ‘공익인정위원회(Public Interest Commission)’에서 판단한다. 위원회에서 ‘공익성’이 인정될 때만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 영국도 자선위원회(Charity Commission)와 같이 전문성을 가지고 비영리 영역을 모니터링하는 독립기관이 있다. ☞일본 ‘공익법인법’ 자세히 뜯어보기 

#2단계 : 사단법인에서 지정기부금 단체로의 변신, 주무 관청과 기재부의 사각지대

2015년 12월 24일, 새희망씨앗은 비영리 사단법인에서 지정기부금 단체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당시 주무 관청인 서울시가 서류 심사를 거쳐 기획재정부 법인세과에 추천했고, 기획재정부에서 심사를 통해 지정기부금 단체를 지정했다. 지정기부금 단체가 되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할 수 있고, 기부자들은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단체의 ‘공익성’이 인정된다는 의미에서 부여되는 인센티브다. 새희망씨앗은 지정기부금 단체가 되면서 전국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나갔다. 경기도 광명시와 대전에 지부 설치를 이유로 2016년 4월 주무 관청을 서울시에서 여성가족부로 이관할 것을 요청했다. 이후 한 차례 현장 점검을 한 뒤 2016년 8월 새희망씨앗의 주무 관청은 여성가족부로 이관됐다.

새희망씨앗 지정기부금 단체 추천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을까. 서울시 관계자는 “시·도에서는 법인설립허가서 사본, 법인등기사항 증명서, 정관 등 단체의 서류 요건이 충족하면 기획재정부에 추천을 하게 되고, 적격 여부를 확인하는 심사는 기획재정부의 역할”이라고 선을 그었다. 반면 지정기부금 단체 심사기관인 기재부 관계자는 “비영리단체가 정관에 따라서 제대로 활동을 하고 있는지, 홈페이지에 사업 내역은 공시돼 있는지 등을 확인하며, 사후관리는 주무 관청이나 국세청 소관이다”라고 밝혔다. 기재부 소관이 아니라는 말이다. 설립과 등록, 모니터링은 주무 관청, 세제 혜택 권한 부여 및 박탈은 기획재정부가 담당이라는 이유로 서로 책임을 미뤘다.

문화예술 관련 비영리단체 활동가 L씨는 “서류는 얼마든지 꾸밀 수 있고 가짜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현장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무 관청의 경우 1~2명의 공무원이 많게는 600곳 이상의 단체를 모니터링해야 하는 구조다. 올해 주무관청이 서울시인 비영리단체가 605곳, 여성가족부 242곳, 보건복지부 229곳에 달한다. 현재 인력만으로는 현장 검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현행법과 제도는 공익법인의 ‘공익성 검증’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구조”라고 입을 모은다. 해당 비영리법인이 공익사업을 하는지 모니터링을 하는 주무 부처와 세제 혜택 권한을 가진 기재부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호주도 4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처럼 자선단체, 비영리단체가 부처별로 인허가를 받는 형태였으나 2012년 12월 모든 자선·비영리단체를 총괄 등록하고 관리하는 정부기관 ‘ACNC(호주 자선 비영리 위원회·Australia Charities and Non-for-profits Commission)’를 설립했다. 자선단체가 ACNC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단체의 정관, 규칙, 이사회 회의록 등 세부 정보와 연간 회계 정보 및 재무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ACNC는 5만개가 넘는 비영리 자선단체의 등록부를 보고 기금을 모니터링한다. 증거가 있으면 조사하고, 의도적으로 사익을 추구한 것이었다면 국세청 감사를 통해 돈을 회수한다. ☞호주 자선 비영리 위원회가 궁금하시다면?

한편 우리나라도 ‘시민공익위원회(가칭)’를 설치해 현재 부처별로 산재된 공익법인 설립 허가 및 관리 감독 권한을 일원화하고, 공익성 검증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여야에서 나란히 발의된 상태다. 


#3단계 : 기부금 사용은 제 맘대로, 홈페이지만 보면 멀쩡?

국세청 공시제도도 허점이 많다. 새희망씨앗 2016년 공익법인 결산서류 자료를 확인해보면, 고용 직원 수는 8명인데 연간 총급여 지출액은 4187만5267원으로 공시돼 있다. 직원들의 평균 월급이 43만6200원꼴이다. 총수입 21억1883만원 중 운영비 및 인건비로 쓴 비중이 겨우 5%에 그친다. 공시 자료 숫자로만 보면 수입의 95%나 목적 사업에 충실하게 지출한 공익법인이다.

심지어 비영리단체의 간접운영비(15%) 가이드라인 비중보다도 훨씬 낮다. 국세청 법인세과 관계자는 “공익법인 공시제도는 시민단체나 시민들이 직접 단체 정보를 확인하면서 모니터링을 하기 위한 목적에 가깝다”면서 “국세청은 해당 정보를 보여줄 의무는 있지만, 해당 법상 비영리법인 관리감독은 주무 관청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단법인 새희망씨앗의 2016년 국세청 공시자료.

공시 내용도 문제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자산 100억원 이상의 대형 공익법인은 의무적으로 외부 회계 감사를 받아야 한다. 지난 10일, 공익법인 평가업체 한국가이드스타에 따르면 자산 100억원 이상 대형 공익법인 1992곳 중 외부 회계 감사를 받았다고 표기한 법인은 60.5%(1205개)였지만, 실제로 외부 감사를 받고 증빙 서류 전문을 첨부해 공개한 곳은 38.5%(767개)에 불과했다.

비영리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비영리단체 경영지원팀에서 5년가량 근무했던 H씨는 “기부자들은 후원금이 직접 사업비에 쓰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간접운영비 가이드라인 기준에 맞춰 공시하지만, 대신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다든지 다양한 편법을 써서 자금을 유용하는 곳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 사실상 기부자가 비영리단체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곳은 공식 홈페이지와 국세청 두 곳뿐이다. 제3자 모니터링 기관으로는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 자료를 바탕으로 재무 정보 분석 데이터를 제공하는 한국가이드스타가 유일하다.

공익법인 공시서류를 확인할 수 있는 국세청 홈택스. 이미지를 누르시면 해당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미국 국세청(IRS)은 비영리단체 공시 양식인 ‘양식 990(Form 990)’에 따라 기부금 수익과 사용 내역, 사업 내용과 내부 의사 결정 구조 및 임직원 보수까지 공개하도록 한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국에서는 가이드스타, 채리티 내비게이터, BBB 와이즈기빙 얼라이언스 등 다양한 곳이 비영리단체 모니터링·평가 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호윤 회계사(삼화회계법인·한국 NPO 공동회의 전문위원)는 “국내 비영리단체들의 재무회계 기준의 방향성을 확립하고 어떤 재무 정보를 포함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거쳐 국세청 결산 공시 양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한국도 미국처럼 국세청 공시 사이트의 개방성을 높여 외부 평가가 활발히 이뤄져야 건강한 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미국 비영리단체 투명성의 비밀을 낱낱이 알려드립니다

#4단계 : 공익법인 부정부패, 신고하려 해도 채널이 없다

올해로 설립 7년째인 비영리 사단법인의 기업 기부금 관련 부정부패를 알게 된 S씨는 이를 신고하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에 전화를 걸었다. 공익신고과를 거쳐 부패행위신고과로 연결됐지만, 해당 과에서는 “공무원의 부패나 공공기관 자금 횡령까지만 해당된다”면서 주무 관청 공익법인 담당과를 연결해줬다. 해당 주무관청 공무원과 통화를 했지만 담당자는 “정부 예산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검찰이나 경찰에 고소·고발하라”는 답변을 했다. “법인설립 허가를 해준 주무 관청에 감사 권한이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자 “내부고발자가 퇴사하고 악의적으로 말하는지 알 수 없지 않으냐”고 되물을 뿐이었다.

새희망씨앗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사건이 알려지기 전부터, 비영리 업계에서도 소문은 파다했다. 비영리민간단체 J의 사무국장은 “콜센터를 사용해서 적극적으로 신규 후원자 가입에 나서는 걸 보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상하다’는 말이 돌았다”고 말했다. 새희망씨앗 대표 및 임직원의 횡령 혐의가 밝혀지기 두 달 전에 한 네티즌은 블로그에 ‘새희망씨앗은 사기단체 같다’며 분석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비영리단체의 부정부패를 목격했다 하더라도, 신고 절차와 신고자 보호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비영리단체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주무 관청에 신고하는 절차나 부서도 찾기 힘들다. 정부 18개 부처 중 법무부, 국토부, 해수부만 홈페이지 내 비영리법인 부정비리신고센터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사회복지사 J씨는 “결국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비리나 부정부패를 가장 많이 알게 되는데 고발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 “안전한 내부 고발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5단계 : 5만명의 기부자 피해, 책임지는 부처가 없다

새희망씨앗 기부 피해자 모임 네이버 카페에는 피해 사례가 매일같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현재 추정되는 기부 피해자는 약 5만명, 카페 회원은 3000명 정도다. “매월 3만원씩 24개월 카드 할부로 결제했고 아직 17개월이나 남았다”, “이제 인생에서 기부금은 없다” 등 기부 피해자들의 한맺힌 후기들이 수백개다.

새희망씨앗 기부 피해자들의 네이버 카페 . 이미지를 누르시면 해당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이대로 사건은 종료되는 것일까. 새희망씨앗 사건의 경우 대표의 변호사비를 후원금으로 충당한다는 보도가 최근 나왔다. 지난해 미르·K스포츠 재단 사건과 판박이다. 2016년 7월 말,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 모금 과정에 불법적 요소가 있다는 보도가 나온 지 8개월 후인 지난 3월, 주무 관청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두 재단의 설립 허가를 취소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재단 청산 절차는 진행 중이다. 그 사이 K스포츠 재단 이사장 및 7명의 직원이 수개월째 월급 명목으로 매달 수천만원을 챙겼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 시스템상 비영리단체의 합병과 청산 등이 자유롭지 못해 실제 사업을 하지 않는 휴면 재단도 수두룩하다”며 “무조건 국고 환수를 고집하지 말고 해외처럼 비영리단체 합병 청산을 유연하게 하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새희망씨앗 사건의 최종 책임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관리감독을 안 한 주무 관청일까, 지정기부금 단체로 승인을 해준 기획재정부일까. 아니면 엉터리 공시 자료를 그대로 둔 국세청일까. 기부자들의 선의를 짓밟는 ‘제2의 새희망씨앗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관련 법과 제도의 개선이 시급한 시점이다.

더나은미래 특별취재팀 = 김경하·주선영·박민영·박혜연 기자 

∗더나은미래는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제3섹터 10대 이슈를 연말까지 기획연재합니다. 다음호에는 기업의 사회적책임(CSR)과 사회적 가치 평가 이슈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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