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8일(일)

[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 ‘갑을 관계’에서 ‘동등한 파트너’로… 대전환 실험이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 분석 …<시민사회 분야①>

 

文 정부 “국가 중심의 민주주의, 시민사회 주도로 바꾸겠다”
시민사회기본법 제정 움직임, 국정운영 패러다임 바뀌나

‘정부는 제3섹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를 적극 지원하고자 함을 선언한다.’

2011년 네덜란드 정부는 네덜란드의 ‘제3섹터(필란트로피)’와 공식적인 협약을 맺었다. 1998년 전 세계 최초로 정부와 제3섹터 간 파트너십 협약을 맺은 영국의 선례, ‘더 콤팩트(The Compact)’ 협약 모델을 본뜬 것이다. 테오 슈이츠(Theo Schuyt)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 필란트로피학과 교수는 “복지국가라는 유럽에서도 20년 전부터 시민이 주도하는 ‘필란트로피’의 역할과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 주도’로 성장해온 우리나라에서도 정부와 제3섹터 간 협력이 가능한 일일까. 출범한 지 100일.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국정 운영 계획 및 100대 국정 과제에서 “국가 중심으로 이끌어온 민주주의를 시민사회 주도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70년 묵은 정부 주도 방식의 국가 운영, 이제는 바뀔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 심층 분석, 제1편은 시민사회와 공익 단체 관련 과제다.

◇정부 정책 반대 단체 아닌 공익 활동 단체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

‘공익 증진을 위해 시민사회와 함께 협력하겠다.’

100대 국정 과제에선 ‘시민사회 성장 기반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앞으로 5년간 시민사회 발전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명시한 셈. 이를 위해 ▲’시민사회발전기본법(이하 시민사회기본법)’을 제정하고, ▲전국 단위의 ‘시민사회발전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상임변호사는 “한때 ‘시민사회’라는 용어가 정부에 반대하고 시위하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통용됐지만, 원래 의미는 시민들이 불특정 다수의 공익을 위해 조직한 활동이나 단체를 일컫는 폭넓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며 “현행법 체제에서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 법인, 사회복지 법인 등 각기 다른 법의 적용을 받는 주체들을 ‘공익을 위한 시민사회 조직’이라는 큰 개념에 담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사회적 기업이나 마을 기업, 협동조합 등에 대해서도 “영리·비영리 여부와는 별개로 기존의 비영리 모델 및 시장경제 모델을 보완하고 사회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이미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 법인 등 다양한 시민사회 주체를 다루는 법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 ‘시민사회기본법’을 제정하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시민사회 현장 전문가들은 “기존의 법과는 ‘취지’나 ‘패러다임’ 자체가 다르다”고 했다. “기존 법안들이 시민단체 지원이나 세제 등과 관련된 ‘규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면 시민사회기본법은 ‘복잡해진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시민사회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정부와 시민사회가 협력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가치를 담는 게 골자”라는 것. 위정희 사단법인 시민 이사는 “기존 법제하에서는 정부가 시민단체에 보조금을 주고 업무를 위탁하고 관리하는 ‘갑을 관계’ 성격이었다”며 “이번 법안에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운전대를 정부와 시민단체가 함께 잡고 협력한다는 철학을 담는 게 큰 차이”라고 했다.

◇정책 수립 과정에서 시민 참여 늘려야

‘시민사회기본법’이 도입되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공익 분야 관련 정책의 수립과 시행, 평가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함께 협력하도록 원칙이 만들어질 계획이다. 위정희 이사는 “가령 ‘사드’라고 하면 국방부 장관이나 대통령만의 일이 아니라 해당 지역민, 군부대가 있는 지역, 아들을 군대 보낸 부모 등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라며 “진정한 ‘국민주권 시대’라고 한다면 해당 의제에 대한 여러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그 창구에서 대안도 제시하고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라고 했다.

‘관 주도로 가진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건강한 시민사회를 위해선 자생적으로 성장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 정선애 서울시NPO지원센터장은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시민사회 조직들이 성장하고 전문화됐지만 연대와 협력은 취약해진 게 사실”이라며 “시민이 주도하는 시대로 넘어가기 위해서 시민사회기본법은 하나의 시작점일 뿐이고, 법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 바깥의 시민사회가 단단한 네트워크를 다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오는 9월 21일 ‘공익 증진을 위한 시민사회 활성화 전국 네트워크’ 준비 위원회가 발족한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한국시민센터협의회, 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 종교계자원봉사협의회, 한국마을지원센터연합,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 등 그간 분야별로 나뉘어 ‘각개 약진’ 했던 시민사회 조직들이 참여했다. 시민단체를 하나로 엮는 장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공익 법인 투명성, ‘새 틀’에 담겨야

시민사회 주체 중 ‘공익 법인’과 관련한 내용도 100대 과제에 별도로 포함됐다. ▲2019년부터 민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시민공익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것. 현재 부처별로 산재된 공익 법인 설립 허가 및 관리 감독 권한을 일원화하고, 공익성 검증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익 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익법인법)’ 개정안이 여야에서 나란히 발의된 상태다.

1975년 제정돼 올해로 40년이 넘은 ‘공익 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익법인법)을 두고 “시대에 맞지 않는 틀”이라며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던 상황. 문제는 국정 과제에서 제시된 ‘시민공익위원회’ 관련 안이 ‘제2의 미르·K재단’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지다 보니 ‘시민사회 활성화’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우려가 제기된다는 것. 박태규 연세대 명예교수는 “현재 나온 공익법인법 개정안은 ‘공익 법인의 활성화’보다는 공익 법인의 규제와 감시에 가까운데, 잘못된 곳을 처벌한답시고 다른 곳들도 규제 일색이어서는 큰 흐름에 맞지 않는다”며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겪으며 정부 혼자선 할 수 없고 비영리가 제 역할을 잘 해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이 세계적인 흐름인 만큼 정부에선 ‘비영리 민간 영역 활성화’라는 큰 방향성을 가지고 성과를 잘 내도록 촉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더나은미래 특별취재팀=정유진·김경하·주선영·박민영·박혜연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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