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8일(일)

‘팬사인회 응모권’ 뒤에 쌓이는 플라스틱…케이팝 음반 규제 목소리 커져

케이팝 음반 판매량은 1억장을 돌파하며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지만, 실제 음악 감상을 위해 음반을 사는 소비자 비율은 5.7%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팬사인회 응모권과 랜덤 포토카드 수집 등 비음악적 소비가 주를 이루면서 환경 오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1월 20일 ‘지속가능한 케이팝 올바른 소비문화 조성을 통한 기후 대응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려 케이팝 음반 판매 상술을 멈춰야 한다는 의견이 공유됐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실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지속가능한 케이팝 올바른 소비문화 조성을 통한 기후 대응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려, 케이팝 음반 판매 상술을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번 토론회는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과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시민단체 케이팝포플래닛과 소비자권익포럼이 공동 주최했다.

◇ 음반 제작에 사용된 플라스틱 5년 새 14배 증가

2022년 음반 판매량은 약 7700만장, 국내 음반 제작에 사용된 플라스틱 양은 801.5톤이다. 2017년에는 음반 740만장이 팔리며 55.8톤의 플라스틱이 쓰였다. 무려 5년 사이 플라스틱 소비량이 14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2023년에는 전년 대비 51% 증가한 1억1600만장이 판매됐으며, 환경부는 당해 2260톤의 플라스틱이 사용된 것으로 파악했다. 케이팝포플래닛에 따르면 음반 한 장 제작 시 약 500g의 탄소가 배출된다. 대부분의 음반은 자연 분해에 100년 이상 걸리는 폴리카보네이트와 재활용이 어려운 폴리염화비닐(PVC) 소재로 제작된다.

음반 구매가 팬사인회 응모권과 굿즈 수집 목적으로 이뤄지면서, 환경 문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2023년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케이팝 팬 52.7%가 굿즈 수집을 위해 음반을 구매했으며, 판매량 상위 음반의 96.9%는 랜덤 포토카드를 포함하고 있었다. 올해 한 아이돌 그룹은 19가지 버전의 음반을 동시에 출시하기도 했다. 김나연 케이팝포플래닛 캠페이너는 “케이팝 팬들이 팬인회에 당첨되기 위해 몇백만 원어치의 음반을 사는 일이 빈번하다”고 언급했다.

김나연 캠페이너는 케이팝 산업 내 과도한 음반 판매 경쟁도 함께 지적한다. 음반 판매량은 각종 시상식의 수상 지표로 사용되는 동시에 가수의 인기를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미디어와 케이팝 팬덤에서 일주일 내 음반 판매량을 뜻하는 ‘초동’을 언급하며 순위를 줄 세우기 때문에 팬들이 경쟁심리에 더 많은 음반을 구매하게 된다는 것이다. 팬덤에서 자체적인 불매 운동이 어려운 이유다.

11월 20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지속가능한 케이팝 올바른 소비문화 조성을 통한 기후 대응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실

◇ 자율 규제·음반 집계 방식 변화 필요

이날 토론회에서는 근본적으로 음반 판매량을 줄일 수 있도록 엔터테인먼트사의 자율 규제와 음반 집계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채지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음악 차트에서 음반 판매량 집계를 제외하거나 한 가지 음반만 집계하도록 변경하는 것이 빠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실제 영국 차트는 랜덤 요소가 포함된 음반을 판매량 집계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에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은 랜덤 요소가 없는 버전의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음악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촉진하기 위한 협의체인 MSA(Music Sustainability Alliance)의 엘레노어 앤더슨 상임이사는 “엔터사는 자율 규제를 통해 앞으로 도입될 가능성이 있는 법적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다”며 “판매한 음반과 굿즈에 대해 책임을 지고, 고객이 원하지 않는 제품을 회수해 재활용하거나 다시 판매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용환 NH 아문디 팀장은 “포토카드 등 랜덤 굿즈는 청소년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며, 사행성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며 “이로 인해 ESG 투자에서도 배제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광호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사무총장은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책임감을 느끼고 자율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하며 업계 또한 노력 중이다”고 말했다. 다만 케이팝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인식이 퍼지는 것에는 우려를 표했다. 최 총장은 “음반 제작으로 인한 플라스틱 소비량이 전체 환경 오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며 “케이팝을 환경 캠페인에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현목 문화체육관광부 대중문화산업과장은 “업계 자율 규제가 최선이지만, 결과물이 미흡할 경우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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