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7일(토)

[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트럼프 2기 정부, 미국 데이터 정책 어떻게 바뀔 것인가

김재연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

2024년 11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다. 트럼프는 양당 후보가 박빙의 대결을 벌일 거라 점쳐졌던 모든 격전지에서 승리했다. 트럼프의 득표율은 유타주와 독립 행정 구역인 워싱턴 D.C.를 제외하면 미국의 모든 오십 개 주에서 지난 2020년 선거보다 우세했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미국의 데이터 기반 정부 정책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먼저 미국의 데이터 정책 기조는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의회가 2018년에 제정한 ‘증거기반 정책수립 기초법(이하 증거기반정책법)’은 미국 정부가 데이터를 통해 증거를 수집한 뒤 해당 증거를 통해 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할 것을 권고한다. 증거기반정책법에 따라서 연방기관들은 매해 미국 의회와 대통령실의 예산실(OMB)에 ‘어떻게 증거에 기반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하는지’를 보고해야 한다.

또한, 이 법안은 미국 정부의 인재 선발 기준도 바꿨다. 이 법안 덕분에 미국은 연방정부부터 지방정부까지 데이터 과학자를 정식으로 공직에 채용할 수 있게 됐다. 2024년 11월 기준, 미국 정부의 채용 사이트에 나와 있는 데이터 과학자 채용 공고만 1200건이 넘는다. 이 증거기반정책법은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미국 의회에서 통과됐다. 나아가, 이 법안은 양당이 공동 발의한 법안이다. 법안의 주요 발의자는 하원의장을 맡았던 폴 라이언 공화당 의원, 그리고 현재 상원의 임시의장을 맡고 있는 패티 머리 민주당 의원이다. 증거기반정책법이 양당의 지지 하에 의회에서 통과된 만큼 이 흐름은 트럼프 2기 정부에서도 비슷하게 유지될 것이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미국 정부의 데이터 정책 기조는 유지되나 이 정책을 받치는 기둥, 즉 미국 정부의 행정 조직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1기 정부의 말미에 시도됐던 ‘스케줄 F’라는 대통령 행정명령이 있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미국의 관료사회가 재계와 비밀리에 협력하여 미국 사회를 조정한다는 ‘심층국가(deep state)’ 음모 이론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이 심층국가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트럼프 1기 정부는 ‘스케줄 F’를 도입했다.

이 행정명령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연방 공무원 중 5만 명을 정무직으로 바꾸고 이들이 자신의 ‘국정철학’ 혹은 ‘입맛’에 맞지 않으면 해임할 수 있다. 행정명령의 취지는 충성도가 떨어지는 전문 공무원을 손쉽게 움직일 수 있는 측근 세력으로 교체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스케줄 F’가 다시 등장할 것이란 조짐은 이미 있다.

2024년 4월,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은 트럼프 2기 정부의 정책 아젠다를 정리한 프로젝트 2025를 발표했다. 여기서도 스케줄 F는 차기 미국 정부의 권한을 대통령(트럼프)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고 언급된다.

연방정부의 공무원들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면서 일을 하게 되면 ‘증거 기반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미국은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따라 공무원의 선발과 평가는 의회의 몫이다. 미국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가 법을 만들고, 법을 행정부가 집행한다. 미국의 정부업무수행성과법(GRPA)에 따르면 전문 공무원이 맡은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의회다.

하지만, 스케줄 F는 이 원칙에서 벗어나 대통령이 의회를 거치지 않고 단독으로 공직자의 업무 능력을 평가하고 이에 따른 처분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이렇게 되면 연방 공무원들이 대통령 눈치를 보지 않기가 힘들다. 증거기반정책법에 따라 증거에 기반해서 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하는 것은 중요한 원칙이자 업무의 일부다. 그러나 스케줄 F가 존재하는 한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면 자리를 보전할 수 없다.

미국의 독립된 행정부 발달의 역사는 곧 미국 정부 역량 발달의 역사다. 미국은 19세기 말의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고 뉴욕, 시카고, 보스턴 같은 대도시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들 도시를 다룰 행정 능력은 부족했다. 당시 공무원들은 객관적 선발 과정이 아니라 정치인들의 인맥을 통해 채용됐다. 공무원들의 선발 기준은 능력이 아니라 특정한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충성도였다. 전문성 없는 공무원들이 복잡한 행정 업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나아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정부 조직 내에 뿌리를 내리다 보니 공무원들은 곧 부정부패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미국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사회적 모순에 반발하여 일어난 정치 개혁 운동(Progressive Era)이 크게 일어났다. 이때 제기된 주요 아젠다 중 하나가 이 같은 정무직 공무원들을 전문 공무원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1883년에 통과된 펜들턴 공무원제도 개혁 법안이 대표적이다. 미국 하원이 1976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904년이 되자 연방정부 직원 반 이상이 정치적 인맥이 아니라 능력으로 선발됐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증거기반 정책의 기조가 유지돼도 ‘스케줄 F’가 부활한다면 미국의 데이터 정책은 위기다. 연방 공무원들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증거 기반 정책 수립이 이뤄지기 어렵다. 증거는 고용 안정성보다 더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지 않는다. 증거기반 정책의 기조가 유지된다고 할지라도 이를 뒷받침할 관료 조직의 독립성, 그리고 전문성이 취약해진다면 미국의 데이터 정책의 미래 역시 어둡다.

김재연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

필자 소개

학계와 실무를 모두 경험한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입니다. 존스홉킨스 SNF 아고라 연구소의 연구교수이며 하버드 케네디 스쿨 공공 리더십 센터의 연구위원입니다. 이전에는 미국의 대표적 시빅 테크 단체인 코드 포 아메리카(Code for America)의 데이터 과학자로 미국 정부와 협력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더 쉽고, 빠르고, 편하게 복지 혜택을 누리도록 돕는 일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KDI 정책대학원에서 데이터 과학 담당 교수로 일했고, 공익 목적의 데이터 과학을 소개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세종서적 2023)’란 책을 썼습니다. UC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고, 미국 정치학회(APSA)로부터 도시, 지역 정치 부문 최우수 박사학위상(2022), 시민참여 부문 신진학자상(2024)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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