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1일(금)

相生 외면하면 생존 힘들다”… 지속가능성에 눈 돌리는 글로벌 기업들

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 칩 피츠 스탠퍼드대 교수 대담

대기업 동반성장 부서, 2010년 25개에서 올해 78개로 늘어나
경제 발전 혜택을 재벌 기업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뜨리는 역할 하는 게 CSR

동반성장 트렌드와 전망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8일 만난 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과 칩 피츠(Chip Pitts) 스탠퍼드대 교수는 3시간 넘게 대담을 나눴다. 두 사람은 “동반성장이야말로 저성장 국면에 있는 전 세계 시장에 꼭 필요한 키워드”라고 입을 모았다.
동반성장 트렌드와 전망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8일 만난 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과 칩 피츠(Chip Pitts) 스탠퍼드대 교수는 3시간 넘게 대담을 나눴다. 두 사람은 “동반성장이야말로 저성장 국면에 있는 전 세계 시장에 꼭 필요한 키워드”라고 입을 모았다.

‘갑을(甲乙)’ 논란으로 뜨거웠던 올해, 대기업의 ‘상생’ 점수는 몇 점일까.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출범 5주년을 맞은 동반성장위원회의 안충영 위원장과 동아비즈니스포럼 참석차 한국에 방문한 칩 피츠(Chip Pitts) 스탠퍼드대 교수를 초청해 한국과 미국 등 선진국의 동반성장 이슈를 공유하는 특별대담을 가졌다.

안 위원장은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규제개혁위원장을 거친 정통 경제학자로 지난해 8월부터 동반성장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칩 피츠 교수는 노키아,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기업과인권리소스센터(BHRRC) 등에서 주요 이사직 및 자문위원을 맡아 활동하며 30년 넘게 지속가능경영, 기업과 인권, 좋은 지배구조 등을 연구한 CSR(기업의 사회적책임) 전문가다.

박란희 더나은미래 편집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대담에서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전우(戰友)’처럼, 동반성장에 대한 열의를 숨김 없이 내비쳤다.

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
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

-우선 근본적인 질문부터 해보자. 경기 침체가 유례없이 심각한 지금, 동반성장이 다른 이슈보다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안충영(이하 안)=지금 한국 경제는 저성장, 저고용, 소득 양극화 등 진퇴양난에 빠졌다. 실업 문제가 발생하고, 소상공인 생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중소기업이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만큼, 중소기업의 건강한 발전 없이는 내수 경기가 회복되기 어렵다. 대기업의 기술력·자본력·글로벌 네트워크, 중소기업의 유연성, 벤처의 창의성 등 세 가지를 접목한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융·복합 시대의 신(新)성장동력은 유기적인 네트워킹에서 비롯된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윈윈(win-win) 지점을 찾는 것은 사회 갈등 현상을 치유하고, 한국을 선진국에 진입시키는 발판이 될 것이다.

칩 피츠 스탠퍼드대 교수
칩 피츠 스탠퍼드대 교수

칩 피츠(이하 피츠)=100% 공감한다. CSR은 경제 발전의 혜택이 대형 재벌 기업뿐만 아니라 주주, 공급업체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고루 퍼질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최근 뜨고 있는 ‘공유경제’ ‘순환경제’란 키워드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해로운 물질을 버리고 지속 가능하고 인체에 좋은 제품을 함께 만들어낼 때, 새로운 성장 동력이 만들어진다.

=2010년 대기업의 동반성장 전담부서가 25개에서 올해 78개로 3배 이상 늘어난 것만 봐도, 상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수익을 사회에 단순히 환원하는 것을 뛰어넘어서,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해가는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

피츠=세계적인 자동차 회사 ‘포드(Ford)’를 창설한 헨리 포드는 사업을 시작할 때 직원들에게 일정 수준의 급여를 주는,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경영 정책을 폈다. 직원들이 차를 구매해야 경제가 돌아갈 것이란 생각을 했다. 이게 바로 CSR이다. 생각해보라. 대기업만 돈을 벌면 중산층이 줄고, 서민층이 늘어난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 소비자가 줄고 비즈니스가 감소하는 결과를 낳는다. 지금 재벌 및 대기업에 필요한 것은 동반성장을 위한 마인드셋(Mind-set)이다.

-동반성장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견한 사례는 무엇인가.

피츠=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지속가능발전목표(이하 SDGs)에 발맞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유니레버는 NGO 파트너와 함께 동남아시아의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한 서비스를 비즈니스에 접목시키고 있다. HP는 병원·NGO와 협력해서 전기나 인터넷이 없어도 작동되는 프린터를 개발했고, 실제로 많은 생명을 살렸다. 멕시코의 식음료 회사인 빔보(Bimbo) 그룹은 소상공인과 공급자를 대상으로 저렴한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파타고니아는 국제노동기구(ILO)와 함께 건강과 안전을 해치는 환경오염 물질 등 위험 요인을 제거함으로써, 직원들의 몰입도와 생산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또한 프랑스의 유제품 기업인 스토니필드 요거트(Stoneyfield Yogurt)는 영양 전문 NGO와 함께 파트너 기업인 맥도널드, 바스프(BASF) 등의 밸류체인(value chain·공급망 사슬)을 지속 가능한 절차로 바꾸는 작업을 돕고 있다.

=동반위는 매년 최우수·우수·양호·보통 등 4단계로 나눠 동반성장지수를 평가하고 있는데, 삼성전자·삼성전기가 4년 연속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1차 협력사에 제품 개발을 위한 R&D 비용과 대기업의 전문 인력을 파견해준다. 이를 통해 성능 좋은 제품이 개발되면 무조건 구매해준다.

동반성장 점수가 가장 높아진 기업은 현대미포조선으로, 2011년 최하 등급에서 2012년 최우수로 껑충 뛰어올랐다(최우수 등급을 받은 기업엔 2년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동반성장 담당자는 출입국 심사 때 수속 절차를 면제해준다).

한국에도 기술 및 자금을 지원해 중소기업과 공동 개발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 CJ엔터테인먼트는 ‘2015 엠넷(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 중소기업의 제품을 전시할 공간을 제공했는데, 현장에서 상담이 이뤄지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최근 몇 년 사이 방한한 CSR 관련 석학들이 해외의 성공 사례를 워낙 많이 소개해서 케이스스터디는 잘돼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런 흐름이 실제로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에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지 늘 궁금했다.

피츠=최근 3대 글로벌 메가 트렌드로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더불어 ‘지속 가능성’이 꼽히고 있다. 실제로 갤럽, 이코노미스트, UNGC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CEO의 70~80%가 ‘비즈니스의 미래는 지속 가능성과 떨어질 수 없다’고 답했다. 15년 전과 달리 이젠 UNGC 총회에서도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비롯한 지속 가능성 이슈를 핵심 어젠다로 선정하고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에서도 ‘불평등은 저성장을 초래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리면서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 기업 오너들의 마인드셋이 정말 중요하다. 각 사업부서의 매출 향상 기여도에 따라 직원의 업무 성과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오너들이 동반성장과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위해 일어서야 한다.

피츠=예전엔 소외계층을 배제하고 사업을 했다면, 이젠 해당 계층을 포함시켜 비즈니스를 함으로써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빔보, 나이키, 네슬레 등은 의사 결정권을 갖는 이사진에 여성의 비율을 늘리고 있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사례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한 성공 모델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케아 역시 여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앞으로는 남성적 리더십보다 여성의 리더십 스킬이 성공 요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동반성장을 방해하는 기업 내부 요인은 무엇일까.

피츠=’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저술한 경영학자 짐 콜린스를 비롯해 많은 교수가 ‘대기업의 오만함이 성장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 분석하고 있다. 기존 경영 철학의 핵심이 ‘경쟁’이었다면 이젠 ‘협력’을 통해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때 꼭 기억해야 할 점은 어떤 CSR 활동을 하더라도 사회적 이익과 가치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기업에도, 사회에도 이익이 돌아간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전자제품 중에 위험 요소를 가진 상품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중소기업이 기존 상품의 독성 물질을 배제시키는 친환경 비즈니스를 한다면, 새로운 사업 모델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익만 창출하는 기존의 비즈니스 철학이 문제다. 당장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라도, 국민과 지역사회로부터 배척받게 된다. 중소기업과 사회가 추구하는 공동의 선(善)에 기여하면서 수익을 창출해내는 방향으로 한국 기업들이 눈을 뜨길 바란다. 이를 촉진하는 게 동반위의 시대적 소명이라 생각한다.

-동반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소비자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은데.

=동반성장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직도 대다수 기업이 동반성장 부서를 회사의 이익 창출이 아닌 비용을 쓰는 부서로만 생각한다. 시장경제의 동력은 혁신과 기업가 정신에서 나온다. 소비자의 인식도 차츰 변하고 있다. 남양유업 사태로 소비자들이 불매 운동을 벌였고, 해당 기업의 매출이 10% 떨어졌다. 부도덕한 기업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시장에서 배제될 것이다. 깨어 있는 소비자가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피츠=남양유업은 불공정거래가 밝혀진 직후 1년 새 주식 가격이 3억4460만달러(약 4056억원) 하락했고, 세계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를 낸 영국 석유회사 BP는 합의금·벌금 등으로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손해를 입었다. 폴크스바겐 역시 추락한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난 20년간 100개 이상의 기업을 연구하면서, 이처럼 사회적 가치에 역행하는 방식으로 경영을 한 기업이 없어지거나 큰 타격을 입는 경우를 많이 봤다. 동반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인은 CEO의 ‘마인드셋’이다. 단순히 부정적인 리스크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걸로 봐야 한다.

또한 현장을 잘 아는 중소기업, NGO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 협력하는 것은 비용을 절약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후지제록스(Fuji-Xerox)는 파트너들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활용해, 제품 생산에 들어가는 4000만달러(약 471억원)의 비용을 절약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언론 및 저명인사들이 동반성장 및 CSR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3시간에 걸친 대담이 끝날 무렵, 두 사람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이렇게 입을 모았다. “저성장·저고용의 해법은 동반성장에 있습니다.”

진행=박란희 더나은미래 편집장
정리=정유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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